Commented by nightknight at 2005-07-14 21:31 패치는 Documents and Settings 폴더 전체를 뒤지지 않습니다. IE 와 관련된 API 를 이용해서 해당 주소에 접속한 기록이 있는지만 체크합니다. API 내부 동작에 관해서는 저도 모르겠으나 IE 와 연관된 MS측이 제공한 함수를 이용했을 뿐, 일괄적으로 하드를 검색하지는 않습니다. 공지하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주장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세한 언급을 피한 이유는 MANIAC 님의 말씀처럼 어디어디가 그렇다 하고 발표하게 되면 특정 사이트에 대한 공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무단 배포를 막고 싶었기해 택했을 뿐, 해당 사이트를 공격하고 싶은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사용자가 해당 사이트를 쓰는가의 여부도 관심 없습니다. 다만 저렇게 불편하게 함으로써 해당 사이트에서 조금이라도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크랙해주겠다' 여서 씁쓸할 따름입니다만.
혹시나 불거질 지도 모르는 논란 때문에 첨언하자면, 저는 저 위의 두 분과 마찬가지로 한글패치 자체가 저작권이 어떻고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현재 한글패치의 로더가 행사하는 "소위" 자기권리주장을 위한 장치가 "현행법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 없고를 떠나(물론 있습니다)" 비도덕적이라는 점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인스톨러를 다운로드 받는 페이지와 인스톨러 패키지 자체의 리드미 파일, 그리고 인스톨러 기동시에 화면에 등장하는 주의사항 등에서 "매우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인스톨을 중단하고 배포판 패치를 지울 것을 권유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겠군요.
수집한 정보를 타지로 전송시키지 않고 바로 소각하니까 문제 없다고요? 장난합니까? "무단으로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비도덕적입니다.
또 하나 첨언하자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 릴리즈된 한글패치의 "한글패치로서의 품질"은 상당 수준을 자랑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웹브라우저로 Mozilla Firefox를 사용하고 있고, 짜증나ㅇ공유 따위 들러본 적도 없으니 패치가 설치되지 않을 리는 없겠군요. 그래도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어플리케이션으로서 가져야 하는 형식적인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위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꼭 한번 설치해보고 싶긴 합니다. :)
꼭 저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에 만연한 괴악한 정서를 한탄하고 있는 저 15계명은, 대한민(?)국의 헛점 투성이 법률안과, 미치고 자빠진 뒤에 개념을 아이리버랑 같이 뒷산에 파묻은 판사 잡놈들, 그리고 그거랑 전혀 다를 바 없는 수사관 잡배들에 대한 "대안 있는" 비판입니다.
----------------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커멘트들을 달아보겠습니다. 번호는 위에 트랙백한 원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며, 따라서 비교는 원문을 같이 띄워놓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 2. 금치산과 한정치산에 대한 개념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알콜이나 약물중독으로 온전한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경우 그 상황에 처한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지를 밝혀 오히려 가중처벌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3.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공갈협박과 살인미수 혐의를 합쳐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4. 5. 3번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면 법정모독죄를 물어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문제는 저딴 유아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용납할 뿐더러 오히려 두둔해 주는, 머릿속에 허여멀건 쌀뜨물만 가득찬 판사놈이겠지요. OTL
6. 여기선 그냥 한마디 외쳐주겠습니다. "닝기리 씹숑 -_-" 이건 사회통념에 관계된 문제라 당장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게 서글프기만 합니다.
7. 후우.
8. 이건 4번 5번과 마찬가지. 그들에게 가족이 없다면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우리가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젠장. 약자의 가족이 되어줄 수 없는 나라 따위.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9. 6번과 마찬가지.
10. 오오. 위대한 군중심리. 집단범죄 가중처벌법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매우 절실하게.
11. 당신의 자녀가 소중하다면 남의 자녀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덮어주는 건 결코 당신의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자녀를 망치는 행위입니다.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간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죄를 짓지 않을 거 같습니까?
마찬가지로 치부에만 급급한 학교 교육청 기타 상급교육기관 이 닝기리 씹ㅤㅆㅛㅇ 마피아들아. 더 이상 교육계 물 썩게 만들지 말고 다 꺼져버리란 말이다.
12. 여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수사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지켜주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인권입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최대한 쾌적한 환경에서 최대한 마음 편히 증언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첫째, 이런 사건의 심리 과정에서는 공인 자격증이 있는 카운셀러나 심리학 박사, 혹은 정신과 의사... 아무튼 이 방면의 전문가를 국선 변호사처럼 피해자와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하 카운셀러로 통일) 카운셀러의 역할은 심리 과정에서 최대한 피해자의 인권과 심리상태를 보호하고, 더 큰 트라우마를 입지 않도록 지켜 주는 일입니다.
둘째, 피해자가 가장 편한 방법으로 증언할 수 있도록 제반 법안을 개정해야 합니다. 우선, 녹취 증언의 증거력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심한 정신적 상처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에는 좋은 정신치료 기관이 없어 외국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현행법상 심리 과정에서 반드시 피해자가 직접 경찰이나 검찰에 출두해서 증언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체위는 둘째치고 "가해자가 어떤 자세로, 몇 도 각도로 삽입했나요?" 같은 것까지 물어본다는 건 이미 유명하죠. (Kill Mother-fucking Assholes.) 특히 피해자가 10대 미만의 유소아일 경우는 정말 대책없습니다. 이 경우 카운셀러를 대동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녹취 증언을 남기고, 그것을 수사기관에서 증거물로 인정해 준다면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녹취 증언의 증거력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직접 출두하지 않아도 심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이 부분의 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13. 피해자가 "평소 아는 사이라서 오히려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 라고 주장할 수 있고, 오히려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젠장. 역시 판사가 개념을 챙겨야죠.
14. 여자가 방안에 남자를 들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 그래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 차 한잔 하라고 들였을 수도 있는 겁니다.
수사관들에게 "당신(수사관이 남자라고 가정합시다)이 아는 여자를 방에 초대하는 이유는 같이 떡치자는 것 밖에 없습니까? 이 씨발로마야?"라고 반문하고 싶은거죠.
15. 이건 지방자치제가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시의 집단 이기주의를 박살내고, 사법기구만이라도 대전 쯤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런 사건 법원 가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대법원 가게 됩니다. (사건심리가 길어질수록 피고인한테 유리하거든요 -_-) 제주도 쯤에서 이런 사건 하나 터지면 사건 해결될 때까지 한 5년 정도 고등법원 대법원 왔다갔다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2번의 대안을 채택한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거리의 문제는 남습니다.
물론 이게 대안은 못됩니다만, 심리적인 거리라는 거,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전국 모든 국민들이 수도권과 동일한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최고입니다.
----------------------------
생각 나는대로 몇 가지 적어 봤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대로 추가하겠습니다. 또한 이 열 다섯가지 분노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꼭 이 15항목과 상관 없더라도 이 나라에서 성폭력 범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개선방안이 생각난다면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네. 사실 저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seena 님 말고도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저 글에 담긴 기본적인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블로그는 자율적인 공간이며,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기 블로그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기를 원할 겁니다.
내가 원해서 개설하고, 내가 원해서 운영하는 블로그라는 공간에서조차 어떤 포스팅을 강제당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저 바톤 넘기기를 받아서 이미 포스팅을 두 개 걸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제 주위 분들에게 바톤을 넘겼습니다. 어째서?
저는 저 두 개의 주제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서 포스팅을 남겼고, 제게 바톤을 받으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무언가 재미있는 꺼리"를 "단순히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걸 받는 사람이 그걸 그냥 무시하든, 재미없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 바톤을 받아서 또 하나의 포스팅을 생산하든 관계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 저 같은 건 아니네요.
커뮤니케이션은 화자보다 청자를 중시해야 하며, 그렇기에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대부분의 경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제 입장을 밝혀두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바톤 같은 거 넘어오는 거에 전혀 부담 같은 거 갖지 않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얼마든지 넘기세요. 하지만!
받은 바톤 가지고 뭘 하든 그건 제 맘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합니다. 그리고 안한다는 언급도 안하고 넘어갑니다. 그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자신이 넘긴 바톤이 강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제발 꿈 깨십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저는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블로깅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까지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는 건 질색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바톤에 대해 저런 입장을 견지한다는 의미는, 다른 분들께도 제가 무언가의 포스팅을 강제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건 제 의도를 오해하시는 것이며, 저는 제가 당하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도 제게 그런 걸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 언령 시스템이란? (the Upset에서는 언력言力으로 표기했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언령으로 표기한다)
모든 평행세계는 특정한 링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 뒷산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대표적인 링크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지식은 이 링크를 통해 모든 평행세계로 고루 퍼지는데, 언령은 특정한 말의 떨림에 세계의 지식이 공명해 와서 감기는 현상이다. 온 세상에 충반한 이 지식의 보고는 아직 이름이 지어져 있지는 않은데,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단, 감정이나 가치관, 기타 인격을 갖고 있지는 않다.
2. 언령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
내재된 마력을 세상의 원소와 공명시켜 운용하는 마법과는 달리, 언령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즉, 벙어리만 아니면 누구나 언령을 사용할 수 있다.
언령은 특정한 언어의 떨림에 기반한다. 따라서 언령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말을 배워야 한다. OTL
지성을 가진 존재인 세계의 보고는 특정한 언어의 떨림에 감겨 그 떨림을 발생시킨 존재의 머릿속에 그 떨림이 담은 의미에 부합하는 지식을 직접 불어넣는다. 따라서, 단순하게 현재 시각을 알기 위한 언령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소리를 재생시키는 순간 녹음기는 현재 시각을 알 수 있겠지만, 녹음기가 현재 시각을 알아서 뭐 하겠는가. :)
3. 언령의 유효 범위와 제한 범위는 어디까지?
언령은 지식에 관련된 한 무한하다. 언령 사용자는 언령을 통해 얻는 풍요로운 지식 모두를 원래 자신의 것인 양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언령으로 얻는 지식은 기계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머릿 속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된다. 하지만 그 지식은 신체 능력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언령을 통해 언어를 마스터한다면 그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청각장애를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언령을 통해 자동차 운전 방법을 마스터할 수는 없다. 물론 자동차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작하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이론이라면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지만, 운전은 몸이 익히는 기술에 해당되는 것이니만치 언령으로 마스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한 힘이다. 이런 힘이 알려진다면 첩보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다행히도, 지식의 보고는 요청하지 않은 지식을 강제로 밀어넣는 짓은 안 한다. :)
언령이 작용하는 기제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언령을 마스터하는 일은 간단하다. 그저, 단 한 문장을 언령으로 발현시키면 끝이다.
"언령을 사용하기 위한 언어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알려달라."
하지만, 저 문장에 해당되는 언령은 누가 가르쳐 줄 것인가.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까?
그렇기 때문에, 초월자 외의 다른 어느 누구도 언령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것이겠지.
4. 불균형한 설정
뭐랄까, 너무 먼치킨적인 능력이지만 모르면 쓸 수 없는 법. 그래도 여전히 불균형이 심하다는 느낌이다.
애초에 언령을 셋팅했던 이유는 연결된 평행세계에 대한 지식을 주인공에게 알려주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설정을 붙여나가다 보니 뭔가 내가 옛날부터 원했던 몽상의 구현 비슷한 게 되어 있었다. 꿈꾸어왔던 것...
그리고 지금 와서는 초월자 설정을 받쳐주는 기반 설정이 되어있는 언령을 빼버리는 것도 애매해졌다고나 할까 :)
1. 평행세계는 같은 모양. 마을의 구조와 건물들의 배치 등이 거의 동일하다.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는 부분, 생명체-나무라든지, 길가에 핀 잡초, 논밭에서 재배되는 작물 등-에서는 같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다. 하지만 대자연급 현상-화산폭발, 지진, 대륙판의 이동 등-은 대부분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
그런데 평행세계가 겹치는 부분도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뒷산의 나무는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이 소원을 담아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넣는 명소(?)로 유명한데, Upset에 존재하는 평행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이 새긴 글자도 모두 남아있다. 생명체로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
마이라가 새겨 놓은 Ich liebe Stein. - Emalia von Eisen - 과 김민영 양이 새겨놓은 (심의삭제)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게 인상적.
당연히 평행세계 간의 간섭을 묘사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지금 와서야 뭐 :)
2. 평행세계의 사람(데미휴먼, 휴머노이드 포함)들은 모두 이쪽과 저쪽에서 다른 역할로 살아가고 있다. 일대일 대응이지만 연령과 종족은 다를 수 있으며, 이쪽에서 누가 죽으면 바로 이쪽의 다른 누군가에게 전승(?)된다. 그리고, 이쪽과 저쪽의 평균수명이 다를 수 있다. 사실 외모와 겉보기 연령이 완전히 동일한 세라와 마이라의 경우가 독특한 케이스. 그럼에도 조금 닮기는 한다.
그런데 단 한 사람(주인공 제외), 모든 평행세계에서 동일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초월자가 있다... 는 설정이 있다.
주인공과 초월자의 차이라면... 주인공이 표류자라면 초월자는 관조자 정도의 위치에 있다. 능력 자체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지만, 지식 수준이 남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능력자나 마찬가지의 존재.
3. 평행세계는 현재 둘 이상이다. 저 당시 둘밖에 설정 못했지만, 몇개고 더 있을 가능성(정확히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정도의 수준)이 있다. 당연히 세계가 늘어나면 주인공은 잠들 때마다 헤매는 세계가 늘어날 거고, 세계가 몇 개가 되더라도 초월자는 동일 인격으로 살아간다는 설정.
4. 초월자 씨를 제외하고, 한 인격은 모든 세계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하루 합계 24시간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세계가 더 늘어날 경우 각 세계에서의 주인공의 수면시간은 계속 늘어난다. (아래 글의 시점에서는 주인공이 원래 자신의 세계로 인식하지 못하는 저쪽 세계에서는 하루 여덟시간밖에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5. 저쪽 세계는 단 하나의 대륙으로 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완전히 같은 모양이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알려진 하나의 대륙이 독특한 마법적 재밍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나갈 수 없다. 정확히는, 나가면 어딘가 랜덤한 곳(나가려고 시도한 포인트로 도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륙 한복판 어딘가에 있는 화산 분화구 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재밍 밖으로는 튀어나가지 않는다.)으로 도로 튀어나온다. 불확정성이 심각해서 이제는 그런 독특한 시도를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사실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나(특이체질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긴 하다. 주인공도 이 특이체질이다) 원소를 다루는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는 게 힘이다.
마법과 별도로 언령 비스무레한 것이 존재한다. 마법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면, 언령은 지식을 전달하는 힘. 사실 제대로 알면 세계 전체-링크된 모든 평행세계 전체-가 보듬은 지식을 맘대로 꺼내쓸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지만, 언령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모든 평행세계를 통틀어 초월자 한 사람. 사실 주인공이 언령을 이용해서 중간고사 만점을 받는 에피소드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거기까지 진행도 못해보고 쫑났다 :)
아, 혹시나 해서 확실히 말해두는데, 이 설정 만들 때는 풀 메탈 패닉을 보기 2년 전이었다. (...)
이 정도 설정이 좀 구체적으로 짜여 있었고, 언어 설정은 좀 지저분하고, 캐릭터 설정도 몇몇 보이긴 하는데 쓸모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남자로 살아야 했던 한 소녀가 한 소년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라난 보통 이상의 사랑하는 마음이, 하필이면 표류자로 태어나서 양쪽 세계를 오가며 살던 소년을 한쪽 세계로 끌어당겨 고정시키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평행세계 간에 간섭이 시작되는데...
한참 PC통신 하이텔을 이용하던 시절, 그러니까 4년쯤 전에 훼까닥 해서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제 글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여드리는 게 목적이라서 낯뜨거움을 무릅쓰고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저때는 지금의 작가관이라든지 창작관 등이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때라서 제가 지금 생각하는 이상적인 글과는 대략 3파섹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모티콘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든지, 말줄임표를 남발한다든지, 문장이 대부분 어색하게 끊어진다든지, 지나치게 주인공의 심리에 몰두하다 보니 꼭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든지, 반대로 사족이 많다든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고등학교 첫날이니까 새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선생님과도 친해지는 게 좋겠지?" "그 정도도 모를까봐? 나 늦었어! 입학식날부터 지각할라!" '새 친구라고 해도... 중학교 때 친구들이 거의 다 같은학교에 들어갔는걸 뭐...'
오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고등학교라고 해 봐야 중학교랑 같은 재단이어서 친구들도 거의 다 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규모가 중학교의 거의 두배 가까웠기 때문에 다른 중학교에서 올라오는 애들도 꽤 많다고 한다.
"광/덕/고/등/학/교 라..."
사단법인 광덕학원 안에는 광덕중학교, 광덕고등학교 외에도 광덕여자고등학교와 광덕예술고등학교, 그리고 광덕정보실업고등학교까지 총 다섯 개 학교가 있다. 그렇다 보니 학교 규모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실습 시설과 편의시설들은 모두 학교부지 중앙의 지원센터로 모아서, 총 여섯채의 건물이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오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있는 시스템으로, 규모에 비해 그다지 부지가 넓지는 않은 내실있는 설계라고 들었다.
내가 오늘부터 다니게 될 광덕고등학교는 3번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입학식은 3번 구역 지하체육관.
"...여러분은 앞으로 3년간 이 학교에서 학문을 수양하고 자질을 기르며 교양을 함양하고..."
어떤 학교든지 교장은 따분한 연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입학식이 끝난 뒤 나는 자신이 배정된 1학년 12반을 찾아 윗층으로 올라갔다.
하더니 박은희 선생님은 자신의 귀를 잡아당겨 뜯어(!)낸다. 놀라고 있는 우리에게 들리는 목소리.
"선생님도 테이블토크를 좋아해서 귀걸이 대신 엘프 귀 모형을 달고 다니는 거에요. 예쁘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씩 웃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린애 같다.
잠시 웅성거리다 선생님의 제지로 잠잠해진다.
"테이블토크 반 말고도 CA 반은 정말 많답니다. 대신 우리학교는 한 번 반을 고르면 3년간 똑같은 활동을 해야 하니까, 신중하게 고르세요!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힘들 거라는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 테이블토크 반이 있으면 중학교 때 친구들이 다 모일 건 분명하니까...
"우리 학교는 주 5일 수업 시범 학교에요. 그래서 토요일 수업은 없습니다. 대신, 등교 시간이 좀 빨라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오전 일곱시가 등교시간이에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목요일이요!" "네, 내일은 여덟시까지 오면 됩니다. 내일은 학내 시설 안내랑, 시간표 설명, 그리고 학급위원 선출이랑... 에, 또..." "CA 선택은요?"
아까 선생님에게 질문한 학생이 물었다.
"아, 그것도 내일 합니다. 또 질문 있나요?" "선생님, 출석은 안 부르시나요?" "참, 잊었네요. 그럼 출석 부를께요."
보통 출석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부르는 거지만...
"자기 이름이 호명되면 일어나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세요. 서로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뭐, 뭐, 뭐야!!! 저런 귀찮은...
"권봉근!" "네! 저는 인수중학교에서 왔습니다. 인수중학교 출신은 저 하나밖에 없어서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CA 시간에도 계속 선생님과 만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 그래요."
아까 그 덩치 큰 녀석이군. 근데 그 큰 덩치에 비해 키가 조금 작은 거 같단 말이야... 흠...
"김민영!" "네!"
뭐?? 갑자기 웬 여자 목소리??
"어, 학생은 여자잖아? 어떻게 우리 학교에?" "저, 호적엔 남자로 되어 있어요." "뭐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된 거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지금은..." 하며 둘러보는 그 여자애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그 여자...애? 아니, 쟤는 아까...
"알았어요. 나중에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면담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부탁할께요." "네, 선생님. 아무튼 광덕중학교 출신..." "에~~엑?!!" 광덕중학교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울학교에 여자애가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구!
"여러분! 조용히! 네..." "그 땐 남장을 하고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남장이라? 그러고 보니 3학년 때 우리 반에 김민영이란 이름의 애가 있었다. 쟤가 여자란 말이야?? 뭐 좀 여자애같다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설마 진짜 여자일 줄은...
"김원택!"
호명되었군. 흠... 뭐라고 할까.
"네! 광덕중학교 출신입니다만, 우리 반에 아는 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 "생각...이라뇨?"
"그건..." 하고 이야기하려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봤더니 민영이가 나한테 눈짓을 하고 있다. 제발 이야기하지 말라는 듯 한 눈짓이어서 계속 말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아무튼 저도 CA 시간에 선생님 담당인 테이블토크 반에 들 생각입니다. 저도 테이블토크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게...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호호, 테이블토크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니 선생님 기분이 정말 좋은 걸요. 그럼 다음..."
선생님과의 상견례가 끝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사용할 교과서를 받아 챙긴 뒤에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원택아!"
돌아서 보니 민영이가 서 있었다. 싱긋 웃으며.
"미, 민영아. 너..." "그보다, 아까, 고마웠어." "역시 맞구나... 작년에 너 우리반이었어." "맞아." "어떻게 된 거야? 남장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그러려면 계속 그러든지..." "계속 그러고 싶었는데, 더 이상 남장할 수가 없거든."
하고 싱긋 웃는 민영이의 얼굴이 정말 예뻤다. 예뻤다...?? 뭐야! 민영이는 그냥 친구라구! 이봐! 정신차려!!
"아, 무슨 문제라도?" "응... 여러 가지..."
하며 얼굴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 꿈이라도 꾼 느낌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뿐인데... 이 모든 일이 하룻새에 벌어지다니. 남자애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여자였는가 하면, CA 반에 테이블토크 반이 있지를 않나, 엘프 귀를 달고 다니는 선생님까지... 뭐,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배부른 고민인가?
졸리군... 자야겠다. 몇시지? 겨우 8시인데? 그래도 졸려... ---------------------------------------------------------- 눈을 떴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누군가 내 손을 꼭 붙든 채 침상 옆 의자에 앉아서 잠들어... 침상? 침대가 아니구?
옆을 보니 어떤 여자애가 잠들어 있는데, 짧은 머리에, 붉은색 로브를 입고, 옆구리엔 단검을 차고, 오른쪽엔 1m는 충분히 됨직한 지팡이를 놓아둔 행색이 꼭 환타지 소설의 마도사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무슨 중세시대에나 등장할 만한 옷이군... 어떻게 된 거지?
"깨어났군요, 슈타인."
슈타인? 난 원택이라구! 잠깐... 이건... 꿈인가?
"잠깐, 혹시, 기억을 잃었나요?"
잠깐, 당신은 우리 새 담임선생님이잖아! 어떻게 된 거지?
"일어나요, 마이라, 슈타인이 깨어났다구요."
마이라? 지금 자고 있는 이 여자애 이름인가?
"아...음... 어, 슈타인! 깨어났구나!"
하며 나를 와락 껴안은 이 여자애는... 악! 민영이잖아!
"마이라, 그렇게 좋아요? 슈타인이 깨어난 게?" "당연하죠! 내가 슈타인을 얼마... 앗차. 세라, 사람 놀리기에요?"
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보자니 정말 민영이랑 똑같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이지?
네... 보시다시피 전형적인 이계진입 깽판물...의 패러디가 목적인 글이었습니다만, 역시 작가관이 없던 시절에 대충 떠오르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만들었던 이야기라서 엉망에 개판 오분전.
잠들면 평행세계로 스위칭해 들어가고, 그 평행세계에서 잠들면 다시 원세계로 돌아오는 주인공이 서로 침식해 들어가는 평행세계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라는 황당한 플롯을 구상하고 열심히 글을 써봤으나, 능력부족으로 GG -_-
혹시라도 요청이 50히트 넘으면 뒷부분도 공개할 가능성 있음(펑)
물론, 뒷부분이라고 해도 이 전체 플롯의 1/10도 완성하지 못하고 능력부족으로 손들고 GG쳤으니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글입니다 -_-
이 글은 아마 꽤 많은 분들이 보셨을 법한, 재탕에 삼탕을 거듭하고 있는 글입니다. 제가 몇 번인가 썼었던 Double B의 기반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작성한 글이라서 글이 조금 껄껄할 수는 있지만, 그런 대로 마음에 드는 글이라서 지금은 수정할 생각은 별로 없네요. 나중에 좀 더 나은 형식주의 관련 글을 쓰게 되면 지울지도 모르겠군요.
0. 들어가며 - 문학과 현실의 관계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학이란 개연성 있는 무언가를 언어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한다. 이 대답은 ‘문학의 수단은 언어’라는 것 외에는 문학의 ‘내용-개연성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만 포함하고 있을 뿐, ‘어떻게?’에 대한 고찰은 빠져 있다. 이전까지의 문학 전통에서 ‘어떻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는 독자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었고, 독자는 그저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어떻게’ 작품을 쓰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이 그저 ‘언어를 통해 개연성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언어로 작성된 개연성 있는 무언가’는 모두 ‘문학’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법원의 판결문이나 항해 일지, 또는 열 살 먹은 사촌동생의 일기장을 모두 문학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전술한 것들을 우리는 대개는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학에는 ‘언어’라는 수단과 ‘개연성’이라는 내용 외의 제 3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20세기 초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이것을 ‘기법’이라고 말한다. 즉, 현실을 문학으로 만드는 요소로서 그들은 ‘기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법’, 혹은 ‘기교’는 무엇일까?
1. 문학이란, ‘기교의 총화’이다.
전술했듯이, 언어로 씌어진 것을 모두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문학이 문학이게 하는 것’은 언어라는 수단만이 아니다. 빅또르 쉬끌롭스끼(Victor Shklovsky)는 문학을 ‘그것에 사용된 모든 스타일 상의 기교의 총화’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극단적인 정의는 ‘문학이 문학이게 하는 것’은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사용된 기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형식주의의 입장을 극명히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슬픔의 때가 지나면 기쁨의 때가 올 테니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ii)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픔의 때가 지나가면 / 기쁨의 때가 오리니.
(알렉산드르 뿌쉬낀 -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중)
i)과 ii)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ii)에는 시적 기법이 사용되어 i)과는 달리 ‘문학’으로 인정된다.
‘기법’에 주목하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언어의 독특한 사용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독특함’은 실용적 언어에서 동떨어진, 무언가 ‘왜곡된’ 언어 사용으로 간주되었다. 실용적 언어가 일상적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된다면, 문학적 언어는 그저 우리가 사물을 일상과는 다르게 보도록 해 줄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시’에나 적용될 뿐, ‘산문’에는 단순히 적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산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실용적 언어의 그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피해가기 위해서 당시 학자들은 ‘문학성’에 대해 좀더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문학이 실용적 언어와 구별되는 것은, 문학은 ‘구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시를 가리켜 ‘언어를 순전히 문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징주의자들이 시를 ‘무한한 것’, 혹은 추상적인 어떤 실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한 반면, 쉬끌롭스끼를 비롯한 형식주의자들은 시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시를 ‘시이게’ 하는 작가의 여러 기법을 밝혀내고자 했다.
2. 문학이란 ‘낯설게 하기’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똑같이 자명종 소리에 맞춰서, 혹은 가족들이 깨워서 잠에서 깨어 학교에 와서 똑같은 시간표에 맞추어 똑같은 강의를 듣는다. 똑같은 필통에서 똑같은 펜을 꺼내어 필기를 하며, 똑같은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 일상은 이렇게 ‘자동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만나는 사물들은 일상적이지 않다. 무언가 낯설다. <안나 까레니나>에서 안나는 어느 날 남편 까레닌의 귀가 매우 못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불노리>에서 서정적 자아는 저녁놀이 질 무렵 강물을 바라보며 ‘괴상한 웃음’을 느낀다. 일상적인 인식대로라면 매일 보는 남편의 귀가 못생겼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저녁놀이 질 무렵의 강물을 바라본다고 해서 괴상한 웃음이라는 인식을 갖지는 못했으리라.
쉬끌롭스끼는 이러한 것을 ‘낯설게 하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낯설게 하는’ 감각작용보다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가져오는 ‘기교’의 본질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3. 네러티브 - 스토리(fabula)와 플롯(sjuzet)
<시학>의 여섯 번째 항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사건의 배열’이라 정의한다. 플롯은 그것이 기본으로 삼고 있을 줄거리와는 구별된다. 영화 <박하사탕>의 구조는 플롯과 스토리가 어떻게 다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시이다. 영화는 시간상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야 할 김영호의 죽음을 작품 맨 처음에 배치함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대로의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렇듯,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스토리를 작가가 어떤 문학적인 의도로 재배치한 것을 플롯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플롯의 구별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네러티브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플롯만이 문학적이며, 스토리는 단지 작가의 솜씨를 기다리고 있는 재료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플롯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의 기교를 포함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주제로부터 간혹 일탈하기도 하며, 인쇄되어 나오는 판형을 이용한 유희를 벌이기도 하고, 작품의 부분을 바꾸어 놓는가 하면,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을 ‘플롯’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플롯’이란, ‘낯설게 하기’의 연장인 것이다.
4. 기교 대신 기능(function)을 - 지배소(dominant)
역사의 흐름에 따라 사상은 변화하고, 사상이 변화함에 따라 문학의 개념 역시 변화해 왔다. 즉, 문학적 기교의 가치와 의미 역시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해 왔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기교’의 개념 대신 ‘기능’의 개념이 등장했다.
동일한 기교라고 하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심미적 기능을 지니고 있거나 혹은 완전히 자동화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하오체’의 말투는 사극에서는 현실감을 나타내지만 인터넷에서는 DCinside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다. rhyme은 시에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지만 일상생활에서 rhyme을 지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고어적 어법과 같은 어떤 특정한 요소가 ‘소멸’된다면 플롯이나 리듬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그 작품의 시스템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로만 야꼽슨(Roman Jacobson)은 이러한 요소를 ‘지배소(dominant)'라고 정의하였다. 지배소는 ‘다른 나머지 요소들을 지배하고 결정하며 변형시키는, 예술 작품의 중심적인 요소’로 정의된다. 지배소는 작품을 작품으로 결정화하는 초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작품의 통일성이나 총체적 질서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지배소의 개념이 등장함으로 인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텍스트에 대한 시각을 ‘기교의 집합’에서 ‘기능적인 시스템’으로 바꾸어 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영원 불변의 유일한 가치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문학사는 오히려 영원한 혁명의 역사였다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지배소의 개념 역시 이런 역동적인 가치관에서 나타난 것이어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사를 설명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지배소의 개념을 사용한다. 즉 시적 형식은 제멋대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소의 변화’의 결과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5. 맺으며
러시아 형식주의는 사실 기교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간과한 측면이 많이 있다. 하지만, 기교에 천착함으로 인해 그 동안의 문학비평 이론이 간과했었던 영역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비평 이론이기도 하다. 문학을 문학 그 자체로서 바라보자는 주장은 이전의 작가주의 문학관과는 많이 다른 구조주의적 문학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문학이 ‘낯설다’는 것은 독자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에 빗대어 볼 때 낯설다는 의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에서는 이전까지의 작가주의 문학관과는 달리 독자의 역할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작품을 해석하는 능동적인 비평가’의 입장으로 격상된다. 작가는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대화를 제시하고, 독자는 끊임없이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관계인 것이다.
기획자는 게임의 아이디어를 총괄하고, 게임의 개념을 잡아가며, 다른 구성원들의 작업 현황을 독려하면서도 적당히 독촉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적극성과 성실성, 그리고 조직을 화목하게 만들 수 있는 덕목이 중요한 자리.
2. 시나리오 + 연출
둘이 분리되어도 좋지만, 이 경우 연출자는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야 하며, 다른 팀원들보다 이 둘 간의 의사소통은 열 배 이상 많이 진행되어야 한다. 소규모 팀에서는 보통 한 사람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3. 미디어
원화, 배경음악,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인트로, 어트로 동영상 등.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마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에 잘 들어맞는 퍼즐조각을 만든다는 느낌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게임인가'에 따라서.
원화 쪽은 모르겠으나 BGM의 경우는 대부분 외주 혹은 차용이다. 차용에 있어서의 저작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는 보고서에 명시해 놓을 경우 기획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
4. 툴과 스크립트
영화라면 카메라와 편집기가 필요하듯이 게임이라면 개발 환경이 중요하다. 툴 담당자는 기존에 공개된 툴을 사용할 수도 있고(특히 콘솔게임의 경우는 개발 환경SDK을 따로 제공한다. PC게임의 경우도 SDK에 준하는 개발툴이 어느 정도 있으며, 일부는 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프로그래밍에 자신이 있다면 자신만의 개발환경을 구축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툴이 주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스크립트를 작성하는 것은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성가신 일이다. 웬만한 볼륨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몽땅 작업하기에는 양이 매우 많고, 그렇다고 파트별로 분담하자니 나중에 스크립트를 다 합쳤을 때 뜻하지 않은 버그가 발생해서 디버깅을 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팀은 내부적으로도 자주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미디어나 연출 파트와도 의견교환이 많아지게 된다.
5. 노가다(...)
사실 각각의 팀에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실제로는 단순작업의 반복인 경우가 있다. 원화의 색감보정(대부분 통일성을 주기 위해 필요하다)이나 데이터 용량 최적화, 베타 테스팅 등의 작업이 그것이다. 물론 베타 테스팅은 팀원 전부가 달라붙어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다른 일들은 팀원에 여유가 있을 경우 노가다 전담반을 구성하는 것이 좀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특히 대화는 입으로 직접 대사를 쳐 보자. 글로 쓸 땐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으로 쳐 보면 뭔가 말도 안되는 문장일 경우가 정말로 많다. (대사를 친다는 말은 보통은 연극판에서 사용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입으로 직접 상황에 맞춰 말하며 연기해보는 걸 의미한다.)
2. 일반적인 언어생활에서의 악습은 글에서도 악습이다.
-인 것 같다. 요즘 너도나도 이 말버릇을 남발한다. 정말 안 좋은 습관이다. 고치기 정말 힘든 습관 중 하나이니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번역체. 특히 영어식 번역체보다 일어식 번역체가 훨씬 많이 사용되며, 훨씬 더 알아보기 힘들다. 이중겸양이나 '틀려!'-이건 '아니야!'라고 하는 게 바른 표현이다- 등 의외로 많다.
3. 너무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 글의 호흡이 끊어질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긴 문장 때문에 독자의 집중력이 흐려지는 것보다는 문장이 짧아지는 쪽이 백 배 이상 낫다. 따라서 적당한 문장의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면 차라리 최대한 짧게 끊어쓸 것을 권장한다.
(만연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았던 러시아의 소설가 고골-대표작으로 단편소설 <코>, <외투>, <초상화>, 장편소설 <죽은 혼>, 그리고 희곡 <검찰관>이 있다-은 만연체의 특징을 잘 살린린 글을 썼지만, 그의 기법은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만연체의 매력을 연구하고 싶다면 고골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4. 묘사나 서술에서는 의문형 종결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좋다.
예시> 겨울에는 날씨가 건조해서 비염으로 고생하기 일쑤잖아? (x) 겨울에는 날씨가 건조해서 비염으로 고생하기 일쑤다.
5. 뿌쉬낀의 3문체 이론 변형(가제)
한 문장 안에서는 서로 수준(?)이 어울리는 단어들을 묶어 사용한다. 하나의 문단 안에서는 서로 수준(?)이 어울리는 문장들을 묶어 사용한다. 하나의 글 안에서는 서로 수준(?)이 어울리는 문단들을 묶어 사용한다. 한 인물의 성격에 따라, 그 인물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인물이 사용하는 언어가 결정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예시> 아래턱뼈는 의학 논문에서는 하악골, 깡패들 대화에서는 턱주가리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6. (문예창작에 한정해서) 등장인물의 스테레오타입은 최대한 명확히-설정이 많다면 최대한 시시콜콜하게 자세히- 지정해두자. 입체적인 인간형을 온전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글을 정말 많이 써 봐야 한다.
------------------------------------------------------------------ 일단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본 겁니다. 나중에 더 추가할 일이 있겠지요 :)
----------< 왜 Fate도 아니고 Unlimited Blade Works도 아니고 이거냐 >----------
이어지는 내용에는 Fate / Stay Night의 중요내용이 노골적으로 기술되는 관계로 가려둡니다.
Fate 루트의 정히로인 세이버.
그녀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마음 속 한 마디를 성배를 파괴한 후에야 간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세이버는 자신의 시간을 멈춰둔 채 성배를 얻기 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영령으로 봉사하겠다며 걸었던 조건은 성배를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시로우의 앞에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시간을 멈춰 두고 성배를 얻기 위해 떠난 그 여행에 스스로 찍는 종지부.
그녀는 자신이 멈춰 놓은 시간으로 돌아가 예정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배를 얻으면 영령으로 봉사하겠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는, 그것을 위해 영령으로 봉사했었던 모든 것을 무로 돌린 채 다시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도 영령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성배전쟁, 혹은 영령을 필요로 하는 다른 어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아서 왕과 그녀의 약속된 승리의 검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 우선, 무시되고 있던 음악 지적 저작권에 대한 복구노력 자체는 환영할 일입니다. 저는 음악을 공짜로 사용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남몰래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제 블로그에서 제공하던 다섯 곡의 음악도 쿠스코의 두 곡을 포함해서 현재는 구하기 힘들거나 우리나라에서는 구입하기 까다로운 음반들에서 추려낸 곡들이지만, 우선은 링크를 내렸습니다.
2. 자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이 음악 저작권법을 감히 개악안이라고 하는가?
단정 근거는 천유님의 블로그 해당 글의 11번 항목입니다.
11.음악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저작권 이용허락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허락을 받을수 있는가?
- 국내가요의 경우 아래 3 협회의 모두 허가를 얻어야 함 한국음악저작권협회(저작권집중관리단체) 02-3660-0900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저작권집중관리단체) 02-745-8286/7 음원제작자협회(저작권집중관리단체, 02-02-711-9731/2) 또는 음악출판대리중개회사 - 팝음악 등 외국음악의 경우에는 국내진출한 직배음반사 등 해당곡의 제작사 또는 음악대리중개회사에서 허가를 받아야 함.
저작권 보호가 활성화되려면 궁극적으로 댓가를 치르고 음원을 사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무슨 소리냐? 라고 반문하실 테니 부연하겠습니다.
이건 결국 출판물의 저작권 보호가 활성화되려면 책 판매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즉, 법을 개정하려면 음원 사용자들이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지, 음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만들어서 사용자들이 합법적인 음원 사용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원사용 신청 창구는 단일화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단일화시킨다고 해도 여전히 까다로운 절차들이 남아 있습니다. 음원 사용 용도와 범위(상업 매장 BGM과 개인 블로그의 배경음악에 같은 요금을 매길 수는 없지요)에 따라서 과금하는 표준이 정해져야 할 것이고, 음원의 실 저작권자가 자신의 음원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따라서 또 음원의 가치는 달라질 겁니다.
단적인 예로 어떤 신인 가수와 그 기획사가 첫 음반에서 단 한곡의 음원에 대해서는 홍보 차원에서 무제한 무료제공을 원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내 노래는 내 음반을 구입한 사람과 내 공연에 입장한 사람만 들어야 한다'고 단정하며 아예 음원 사용 자체를 불허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세 곳의 허가를 받아오슈'라니, 이건 해당 세 단체의 밥그릇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혹시 비관세 장벽이라는 말 들어보셨수?)
이건, 결국 자기 밥그릇 지키려다 밥그릇만 박살내는 꼴로 끝날 겁니다.
아니면 음원 사용 신청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나타나서 돈벌이를 하게 될 기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좀 희박한 가능성으로 생각되는군요 -_-
3. 그렇게 복잡하다면서,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간단합니다. 이미 음원 사용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 시장모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모바일 시장입니다. 일부 얼리어댑터족(그들은 스스로 음원을 만들거나, 음원을 재가공하기 위한 툴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소수입니다)을 제외하면, 일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원하는 휴대전화 벨소리(도 엄연한 음원입니다)를 다운받기 위해 약간의 댓가를 지불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싸이월드의 BGM도 훌륭한 시장모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사용자들을 위해 회사가 음원 계약을 맺어서 블로그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약간 다른 시장모델이라서 여기서 언급하기는 좀 그렇군요.)
이런 식의 시장모델이 가능하려면 광범위하고 지능적인 과금체계가 먼저 구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구축되어야 할 것이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체에 거른 밀가루의 본질은 밀가루이다. 하지만, 체에 거르지 않은 밀가루로 구운 케이크와 체에 거른 밀가루로 구운 케이크의 완성도는 확연히 다르겠지.
등장 인물의 사상은 작가 자신의 것이다. 하지만 등장 인물의 캐릭터로 한 번 거른 작가의 사상이어야 한다. 이걸 실패하면 거품덩어리 케이크가 되는 것이겠지. (이것을 극대화한 '자동기술법'이라는 소설 작법이 있지만, 본인도 그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지라 그것까지 다룰 능력은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다면 서술은 최대한 간결히. 독자는 "어딘가에서 아련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려 온 벚꽃잎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그는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봄을 보았다." 따위 문장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 창피하다 -_-a)
물론 만연체의 대가 고골 같은 예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그 방면의 천재 -_-a
----
최대한 독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글을 한 번 읽어보자. 누구나 자기 자식이 예뻐 보이는 법이지만, 그렇기에 가끔은 냉정하게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
주1. 체에 거르지 않은 밀가루의 비유는 번역에서의 의역논쟁에도 일조할 듯 하다. 의역입네 하고 으스대는 애니메이션 자막장이 모씨(g 모 채널에서 항상 씹히는 그 사람 맞습니다)의 번역을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이어이, 의역을 번역자 말투로 하면 어쩌자는 거지?"
의역은 필요하지만, 그따위 번역은 의역에 대한 모욕이다. -_-
주2. 캐릭터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로 캐릭터에게 말하게 하는 작가들도 의외로 많다. <드래곤 라자>의 후치는 작품 후반부에서 그런 모습을 종종 보여서 안타까웠다. 물론 <폴라리스 랩소디>부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게 발전 아니겠는가 :)
<마법서 이드레브>의 로안이 또 좋은 예가 될 듯 하다. (어떤 방향인지는 말 안해도 뻔하다)
부제 -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생각날 때마다 몇 마디씩 덧붙일 듯)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무이한 졸작(!) <타나토노트>에 등장하는 모 신문기자 씨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왜 창작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약간의 편집-이라고 쓰고 왜곡이라고 읽는다-이 들어간다).
"나라고 왜 안 해 봤겠어.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어, 이건 어느 책의 어느 부분에 나오는 어느 문장인데' '어 이건 모월 모일 모시에 누군가가 한 말이잖아' 식으로 전부 다 기억이 나 버리는 거야. 환장한다고."
----
이영도의 신작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이,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는 숙성에 필요한 시간을 제대로 얻지 못한 어린 천재로 자라났고, 그 결과 요절해 버렸다.
----
당신은 아직 젊다. 물론 나도 아직 젊다. 무엇을 그렇게 조바심치고 있나. 시간은 많고, 우리는 적당히 잊으며 살 수 있는 복 받은 사람들이고, 우리의 재능 쪼가리라고 해 봤자 작은 것이니 활짝 피어나기를 느긋하게 기다려 볼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때때로 김매고 물을 주며 거름치고 벌레도 잡아주면서 돌볼 필요는 있지만, 재능을 키우는 건 팔할이 시간이다.
성장과 노화는 같은 말이다.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형이상학적인 가치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재능에서랴.
'소설은 불혹의 장르'라는 말이 있고, '경험은 만물의 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
잘 쓴 글을 읽으면서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그것이 하루이틀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그건 어리광에 불과하다.
감히 1000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한 천재가 되기를 꿈꾸다니.
비평은 겸허히 수용하되, 부끄러워하지 말자. 대부분의 비평은 내 글에서 뭔가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자. 싹수가 노랗게 피어나면 그 싹은 뽑아서 밭에 거름으로 던져버리는 법이다.
물론 가끔 남의 멀쩡한 밭에 아직 여리게 피어났을 뿐인 싹을 밟거나 뽑지 못해서 안달인 미친 놈들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악플은 무시하자. 다행히도 한 번 씌어진 글은 쓴 사람이 아닌 한에야 완전히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하니까.
----
습작은 많으면 좋다. 하지만 습작 단계의 글을 가지고 자신의 천재성을 발굴(이라고 쓰고 착각이라고 읽는다)해내는 우를 범하지 말자. 물론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이지만, 예외를 깨는 건 그야말로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것. 아까도 말했지만, 감히 1000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한 천재를 꿈꾸다니.
글의 완성도와 재미는 별개로 봐야 한다. 완성도는 높은데 딱딱한 글이나 재미있는데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은 아쉬움을 준다. 짜임새 있고 재미있기까지 하면 황홀해지며 재미없는 게 허술하기까지 하면 집어던지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나는 실제로 집어던진 글이 나 자신이 옛날에 썼던 글밖에 없다. :) 물론 S대 이 모양의 책은 샀으면 정말 집어던졌을지도 모르지만(...)
----
적극적으로 자신의 글을 홍보하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언을 얻기 위함이다. 열 명의 정성어린 독자는 습작기간을 반으로 줄여줄 것이다.
----
주1.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지만, 저것 하나만큼은 자신있게 졸작이라고 부른다. 종종 나는 <타나토노트>가 베르베르의 이름을 빌린 위작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도 해 봤었다. 물론 문체에서 드러나는 갖가지 유사성, 비슷한 서사 구조 등에서 그의 개미 3부작과 타나토노트는 동일인의 저작으로 추정되기는 한다.
주2. 곧 연재 시작한지 만 1년이 되는 <피를 마시는 새>이지만,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임으로 신작이라고 해봤다. :)
주3. 이 이글루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보다는 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보다 연륜 있으신 분들도 보이지만, 그분들도 솔직히 '나이먹었다'라고 말할 연배는 아니신고로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