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게임은 객관적이고 엄정한 룰 위에서 성립합니다.

로컬 룰이 엄청나게 많다는 고스톱조차 일단 그 판의 로컬 룰이 정해지면 그 판은 그 룰이 절대적으로 지배합니다.

 

그런데, 여기 그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보드게임(정확히는 카드게임이죠)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주인공이죠.

 

 

 

Apples to Apples[각주:1]

 

이 게임은 두 가지 색깔의 카드를 가지고 진행합니다.

빨간 사과 카드와 녹색 사과 카드입니다.

 

녹색 사과 카드에는 정황, 기분, 상태 등을 뜻하는 단어들이 적혀 있습니다.

(예전에는 형용사 카드라고 불렀는데, 영어로는 분명 모두 형용사가 맞긴 합니다만,

이 게임의 맛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형용사 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빨간 사과 카드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뜻하는 단어들이 적혀 있죠.

(예전에는 명사 카드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분명 모두 명사들이 맞죠. 하지만(후략))

 

이 게임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플레이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심판(Judge)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해당 라운드에서 심판을 맡은 플레이어는 해당 라운드에서 득점할 플레이어를 선택할 권한을 갖는 대신

해당 라운드에서 득점할 권한이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다른 보드게임들과는 달리 이 게임에서 득점은 거의 순수하게 "심판의 주관"에 의지합니다.

심판이 터무니없는 선택을 할 경우 심판이 아닌 플레이어들의 이의제기가 가능합니다만,

이 게임의 프로세스 상 그런 이의제기가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유는 후술합니다.

 

게임의 세팅은 단순합니다.

녹색 사과 카드 더미 및 빨간 사과 카드 더미를 엎어서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

각 플레이어들은 모두 빨간 사과 카드를 7장씩 손으로 가져와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소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 중 첫 번째 심판을 뽑습니다.

(첫 심판을 뽑는 방법은 룰에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카드를 뽑아서 철자가 제일 많은 단어를 뽑은 플레이어를 선택하거나

일반적인 독일식 보드게임의 방식대로 최연장자를 추대하거나 그것은 합의하는 대로 정합니다.)

 

첫 심판은 녹색 사과 카드 더미 맨 윗장 카드를 뽑아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지 못하게 혼자 보면서 해당 카드가 갖는 뉘앙스를 충분히 숙지합니다.

숙지가 끝나면 카드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테이블에 펼치거나,

혹은 게임에서 완전히 제거(게임박스에 다시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하고 녹색 사과 카드를 한 장 더 가져옵니다.

심판이 한 장의 녹색 사과 카드를 테이블에 펼칠 때까지 해당 과정은 반복됩니다.

재미있는 진행을 위해서 심판은 녹색 카드에 적힌 단어의 뉘앙스를 충분히 숙지해야만 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녹색 사과 카드가 테이블에 펼쳐진 순간

모든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에 있는 빨간 사과 카드 중

녹색 사과 카드의 의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카드를 한 장 골라서 테이블 위에 "엎어서" 내려놓습니다.

 

- 전체 플레이어가 6인 이상일 경우

심판은 자신을 제외한 전체 플레이어 수 - 1 장의 카드만을 받아야 합니다. 즉 해당 라운드에서 한 명은 카드를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선착순으로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 심사숙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숙고보다는 직관이 중요하죠.

 

- 전체 플레이어가 4~5인일 경우

심판은 총 4장의 카드를 받습니다. 심판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는 카드를 총 두 장까지 낼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에 두 장을 내려놓을 수는 없고, 한 장을 완전히 내려놓은 다음 또 한 장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테이블에 총 4장의 카드가 모두 놓인 시점에서 더 이상의 카드를 내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심판은 테이블 위에 놓인 빨간 사과 카드를 엎은 상태에서 잘 섞은 뒤에 펼쳐서 누가 어떤 카드를 냈는지 모르는 상태로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영에 수렴할 정도로 줄어들겠지요?)

그리고 카드를 펼쳐서 카드들을 보고 녹색 사과 카드와 가장 잘 어울릴만한 카드를 골라 발표합니다.

기준은 심판의 주관입니다.

 

아래 이미지를 잘 봅시다.

 

 

녹색 사과 카드가 Dangerous 네요.

제출된 붉은 사과 카드는 각각 [Feathers], [Terrorist Attack], [Worms], [Waco, Texas], [Sports Channels], [Steven Spielberg], [NYPD] 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역시 Terrorist Attack이 제일 위험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됩니다만,

만일 심판이 벌레를 끔찍하게 무서워한다면 Worms를 선정할 수 있고

심판 본인이나 심판의 주변 인물 중에 깃털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Feathers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정식으로 용납되는 것이 Apples to Apples의 룰입니다.

물론, 심판은 해당 빨간 사과 카드를 선택한 자신만의 확실한 이유를 플레이어 전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아무 이유 없이 엉뚱한 단어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상기한 예를 들어 깃털 알레르기 때문에 Feathers가 Dangerous에 제일 잘 어울린다는 것은 충분히 확실한 이유가 됩니다.)

 

심판이 빨간 사과 카드를 선택하면 해당 카드를 제출한 플레이어가 이번 라운드의 녹색 사과 카드를 획득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획득한 녹색 카드를 자신 앞에 놓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현재 몇 장의 녹색 카드를 획득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자신 앞에 펼쳐놓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은 모든 플레이어의 손에 빨간 사과 카드가 7장이 될 때까지 보충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한 라운드가 종료됩니다.

 

이제 다음 라운드의 심판은 이번 라운드의 심판 왼쪽에 앉은 사람입니다.

 

게임은 한 플레이어가 12에서 전체 플레이어의 수를 뺀 만큼의 녹색 사과 카드를 손에 넣는 순간 종료됩니다.

단, 8~10인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경우 일괄적으로 한 플레이어가 4장의 녹색 사과 카드를 손에 넣는 순간 게임이 종료됩니다.

 

작년 이맘때(...) Dixit을 소개했습니다.

사실 Dixit 역시 Apples to Apples처럼 심판(Dixit에서는 출제자)의 주관이 게임의 스코어링을 직접적으로 좌우하죠.

Dixit은 더욱 극적으로 출제자 아닌 플레이어들의 주관이 그에 상호작용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만...

그래서 Apples to Apples 는 친한 사람들, 혹은 한 조직에 소속되어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플레이하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알함브라는 내년 이맘때(............) 소개하게 될 듯 하네요.

 

 

 

 

  1. 이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ttp://www.boardgamegeek.com 입니다. [본문으로]
by hislove 2014. 8. 18. 15:30
근 2주만에 인터넷이 연결돼서 오랜만에 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었습니다.

IRC 모 채널에서 공수된 소식에 낚였으니 그것은...

[온라인 쇼텐토텐, 티츄, 푸에르토 리코]
(최신 버전인 1.55를 다운받으세요 :) 매뉴얼 기타등등도 이 사이트에 있더군요.)

쇼텐토텐이나 티츄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이것!

푸에르토 리코 덜덜덜......

즉석에서 모 채널에 있던 네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

포스팅할 생각을 안했기 때문에 스샷은 없습니다만, 대략 설명하자면 예전에 돌아다니던 카탄 온라인처럼 한 사람이 서버를 개설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쪽에 접속해서 진행하는 전형적인 소규모 보드게임 넷플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의 경우, 서버 데몬과 클라이언트가 별도의 실행파일로 분리되어 있어서 서버를 실행시킨 플레이어도 클라이언트를 또 실행시켜서 자신의 IP로 접속해야 한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죠.

[혹시나 해서 127.0.0.1 로 접속해봤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접속이 안 되더군요. 자신의 공인 IP로 접속해야 하나 봅니다.]

일단 접속하고 나면 친숙한 보드가 기다리고 있고... 인원에 맞추어 자동으로 셋팅되고, 인원 수에 따라 조정되는 건물이나 칩의 갯수도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데다 역할과 액션 선택에 따른 변동사항도 자동으로 해주니 편합니다. 다만 내 손으로 직접 셋팅하는 즐거움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요...

직접 모여서 플레이하는 것 만큼의 긴장감은 아무래도 없지만, 그래도 넷플로 푸에르토 리코를 한다는 제약(?)을 고려할 때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이 평가합니다. 국내 개발자 분께서 개발하셔서 한글지원도 무난하고, 각각의 중요한 컴포넌트는 풍선도움말을 달아놔서 마우스를 가져가면 한글로 된 도움말이 뜨지요.

담번에 한판 더 하면 그땐 스샷도 찍어봐야겠습니다 :D 그리고 같이 하실 분 손 -ㅅ-/


by hislove 2007. 9. 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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