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개연성에 대한 변명. (그리고 아마 다운군의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이지만, 트랙백은 없습니다. 당연히 존칭생략)



이야기의 자체 정합성과 개연성은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나는 종종 이 두 가지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내가 이야기의 정합성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예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다리가 없는 사람이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건 괜찮지만, 다리가 없는 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다닌다면 문제가 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사람이 공중에 떠다니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이야기에 모순은 없다. 작가가 이에 대한 설명을 준비해 놓았고, 그것이 납득이 가는 수준의 이야기라면 더욱 문제될 것이 없겠다.

그런데 다리가 없는 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있지도 않은 다리를 사용한다니.

그런데, 실제로 저렇게 눈에 띌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써갈기는 자칭 작가들도 많다는 게 문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

돈이 없는 사람이 가게에서 물건을 공짜로 얻는 건 괜찮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 가게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면 심각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기계치가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상관없지만 기계치가 자동차를 운전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야기의 개연성, 혹은 자체정합성은 "스스로 모순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첫 번째 미덕이다.

무슨 당연한 소리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독자들의 부당한 비난 가운데는 저런 것이 꽤 많이 섞여 있다.

그리고, 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첫 번째 재능이 바로 "본능 수준에서 정합성을 갖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제발 이야기 자체의 설정이나 조건을 무시하고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식(혹은 고정관념)만 가지고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타박하지 말라고. 이런 빌어쳐먹을 새끼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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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love 2005. 5. 22.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