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웹소설 시대다.

국내 출판시장은 이제 교재나 자기계발서 등의 실용서 위주로 완전히 넘어갔다.

순문학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대중문학은 라이트노벨 판형의 독자적인 시장을 제외하면 출판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모바일 디바이스의 발전에 힘입은 웹소설 플랫폼이 신흥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출판시장은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초판 1쇄 500권을 인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것을 보관하는 물류비용도 상당하며, 그것을 판매하기 위한 유통망 확보도 어렵다. 기존에는 전업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규모의 경제를 뚫고 시장에 자리잡은 출판사의 선택을 받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온라인 연재가 등장한 것도 아주 오래되었다. 하지만 온라인 연재는 흔히 "돈 안 되는 플랫폼"으로 낙인찍혀 출판계약을 하면 연재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연재를 통해 전업작가가 되는 하나의 길이 열리긴 했지만, 그 문은 여전히 좁았다. 출판사 입장에서 초기비용을 투자해서 초판을 찍을 만한 수준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쓰는 일부 작가만이 이를 통해 등단할 수 있었을 뿐이다.


온라인 결제 기술이 도입되고 난 이후에도 온라인 연재 시장은 한동안 성장이 정체되어 있었다. 이는 정부 규제로 인해 온라인 결제가 매우 번거로운 탓이었다.


그러다 온라인 소액결제 기술의 변혁으로 웹소설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발생한다. 간편결제 서비스, 흔히 스마트페이라 불리는 기술의 도입[각주:1]이 그것이다. 이 시점에서야 온라인 연재 플랫폼은 완전체인 웹소설 플랫폼이 되었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 누구나 실시간으로 접속하여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고, IDC에 가상의 데이터로 저장되어 물류비용의 증가도 없으며, 간편결제 서비스의 도입에 따라 플랫폼 자체가 유통망으로 진화하였다. 초도물량의 리스크가 없어져 입문의 장벽도 낮아졌으며, 편당 100원이라는 부담없는 가격으로 구매력이 낮은 저연령층도 쉽게 지갑을 열게 되어 웹소설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요즘 웹소설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현대판타지 중에서도 흔히 레이드물[각주:2]이라 불리는 장르인 듯 하다.


특히 요즘 레이드물의 대부분은 "소위" 각성 시스템이라는 설정에서 게임 판타지의 그것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좀더 파고 들어가 보면 게임판타지의 변형판인 "현실에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소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소설 중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박건의 [올마스터][각주:3]였는데, 코즈믹 호러에 준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관에서 그 세계관 끝판왕급 존재들의 싸움에 지구가 휘말린다[각주:4]는, 당시로서는 꽤 독특한 배경설정으로 일부 계층에서는 꽤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레이드물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게임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게임판타지는 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 어떤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됨. (세계관 상 최초인 경우도 많지만, 가상현실 기술이 보편적으로 상용화된 세계관인 경우에도 이번에 출시되는 게임은 다른 경쟁작들을 크게 따돌릴 정도로 기술적인 우위를 갖는 경우가 많음)

2. 주인공이 게임을 시작함 (베타테스터인 경우도 있고, 정식 서비스와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후발주자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음.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는 일반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

3. 게임 속에서 우연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벤트를 발견함.

4. 구르든 날로먹든 내가 짱먹음. 끗.


이 설명이 중요한 까닭은 레이드물 역시 거의 동일한 시퀀스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1. 세계에 대격변 혹은 그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남

2. 주인공이 헌터가 됨

3. 세계관 속에서 우연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인연을 만남

4. 구르든 날로먹든 내가 짱먹음. 끗.


이렇게 된다.


작가지망생의 관점에서 레이드물이 갖는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를 꼽아보자.


1. 장르 특성 상 캐릭터 묘사 용이

2. 장르 특성 상 파워 인플레이션의 합리화 가능

3. 장르 특성 상 개연성 부족의 합리화 가능

4. 장르 특성 상 인간관계 묘사 최소화 가능


1번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레이드물의 조상은 게임 판타지이다. 게임의 특성은 캐릭터의 능력을 수치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가를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사용하여 묘사하는 대신 캐릭터의 힘 스탯이 몇인지, 민첩 스탯이 몇인지, 마력(!) 스탯이 몇인지 등을 이야기하면 된다. 주인공의 성장? 다양한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인공의 성장을 묘사하는 대신 초반부의 스탯과 비교해서 현재 스탯이 얼마나 올랐는지, 장비는 어떻게 교체했든지 등을 설명하면 끝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2번 역시 당연한데, 레이드물의 시작은 현생인류로 감당할 수 없는 적의 침공이다.



이렇게 끝낼 거 아니면 그 감당할 수 없는 적을 감당할 수 있게 주인공이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레이드물을 읽는 독자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다 양해하는 거다.


3번은 더 확실한데, 레이드물은 애초에 시작부터가 개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적의 침공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의 각성까지,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다. 장르 자체의 특성이 그러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개연성 부족은 그냥 눈에 띄지도 않는다.


4번은 작품 성향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만 초보작가들이라면 100% 이 특성을 이용하게 된다. 궁극의 파워 인플레이션, 개연성이 부족하더라도 수치화를 통해 파워가 보장된 주인공은 당연히 어떤 적들이 몰려와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동료가 없어도 된다. 당연히 동료가 없으면 인간관계 묘사는 최소화된다. 물론 동료가 없어도 갈등 묘사를 위해 적은 필요한데, 그 적이 이성이 없는 몬스터라면 당연히 인간관계 묘사는 없는 것이고... 적이 인간이거나 이성이 있는 몬스터라도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된다.


기억하자. 주인공은 세계관 끝판왕보다 강하다.



  1. (대한민국에 한정하여) 기존에 온라인 결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세 개, 많게는 10개 가까운 액티브X 컨트롤을 설치하고 공인인증서와 각종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자를 괴롭히는 쓸모없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간편결제 서비스는 결제를 시도하고 기존에 사용자가 설정한 여섯 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으로 간편하게 결제가 끝난다. 이것은 온라인 결제가 번거로워서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사용자들의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역할을 하였다. [본문으로]
  2. 이세계의 존재(주로 몬스터)가 지구에 차원 게이트 등을 통해 침공하고 일부 혹은 전부의 인류는 특별한 능력을 각성하여 맞서 싸운다는 배경설정 하에 환생이든 회귀든 지나가다 맞은 벼락이든 뭐든 간에 기이한 인연을 만난 주인공이 개중 잘난 놈이 돼서 잘 나간다는 전개가 대부분이다. [본문으로]
  3. 올마스터는 넥슨의 마비노기 라는 게임의 설정을 일부 도용하거나 타 소설의 대사 등을 여과없이 베껴쓰는 등 표절논란을 일으키기도 해서 독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양극단으로 갈린다. [본문으로]
  4. 신적 존재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지구에서 가상현실에 기반한 게임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게임과 현실이 결합되어 버린다. [본문으로]
by hislove 2016. 9. 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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