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유토피아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만년의 역작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이반이 알료샤에게 극시 형식으로 만들어서 해 주는 이야기 [대심문관].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이렇게 항변합니다.

"너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했고, 기적을 구하며 신을 시험하지 말라 했으며, 지상의 권세보다는 하늘의 권세를 따르라고 말했지만, 그 어려운 일을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단 말이냐?"

"세상에는 그저 '모르니까'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갈 뿐인 사람들이 훨씬 많다. 너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너를 따르겠다고 결정한 사람만 보듬고 가겠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네 이름을 팔아서라도' 내가 보듬고 가겠다. 네 이름으로 그들에게 빵을 주고, 네 이름으로 그들에게 기적을 행하며, 네 이름으로 그들의 자유의지를 내게 맡겨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이다. 그래. 나는 차라리 악마와 손잡고 이 모든 일을 행할 거다. 내 앞에서 네가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 대심문관의 논리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유명한 모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서평은 이 [대심문관]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는것처럼 책을 오독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자유이겠지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대심문관의 저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뭐, 다 좋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심문관의 논지에 공감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저 대심문관의 논리를 공박하는 데 실패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찬찬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사는 이상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사회는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며, 모든 사람들이 넉넉하게 먹고 안락하게 살며, 정신적인 피로나 고통을 기적같이 해결해주는 '부작용 없는' 향 정신성 약품인 'soma'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서로 합의한다면 어떤 이성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지요.

그런데, [대심문관]의 논지는 바로 이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에게 아무 고민 없이 살 수 있게 해 주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거죠.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아마 그 세계는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는 바로 그것이 될 겁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대심문관]의 논지에 공감을 표시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멋진 신세계>는 반대한다 이겁니다.

이게 뭡니까? -_-

둘 다 찬동하든지, 둘 다 반대한다면 인정하겠다 이겁니다. 그런데, [대심문관]에 공감하면서 <멋진 신세계>는 싫다고요?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를 고민해 봤습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더군요.

[대심문관]의 화자는 대심문관입니다. 즉, 진리를 아는 소수의 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초인'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화자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멋진 신세계>의 화자는 작가 자신이지요. 그리고 작가는 세계 전체의 구도를 조감합니다. 즉, 대심문관의 입장과는 좀 다른, 좀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게 됩니다. 또한 <멋진 신세계>의 플롯 상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입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내가 대심문관이라면" 저 이야기는 맞다. 하지만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양민일 리가 없다".

결국 지독한 오만함입니다.



이 주제로 러시아 문학 특강 시간에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무려 두 시간 이상 이 이야기로 토론이 이루어지더군요.

저는 그저 독자가 누구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화두를 하나 얻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새삼 독자가 얼마나 오만해질 수 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고요.
이글루스 가든 - 망상구현집단 H 전대

(마지막으로, 분류선택은 실수가 아닙니다 :))

덧.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하고 니체가 계승한 개념 '초인'. 영어로는 a Super Man 이라고 한다는군요.
"그" 영화가 담고 있는 미국 우월주의 사상이 생각나서 좀 씁쓸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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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love 2005. 11. 9.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