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ㄱ, 가, 같이 가! 기다려! 기다리라고!"

누가 보면 수백 미터는 뛰어온 사람처럼 헐떡이며 간신히 따라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직 오십 미터도 이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달려 온 여자아이의 등에 얹혀 있는 거대한 짐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숨 넘어갈 듯이 헐떡이는 것이 엄살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 주는 것과, 실제 그 정도 체력으로 한 달이나 걸릴 여행을 계속하는 것은 정말로 힘들고 난처한 일일 터이다.

하지만 우디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이다. 가뜩이나 작은 체구에 부피가 큰 짐을 지고 이동 중이어서 이동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데, 덩치만 컸지 약골인데다 울보이기까지 한-아이린이 실제로 약골에 울보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디의 선입견 속 아이린은 그런 모습이었고, 이는 충분히 난감해할 만한 상황이다- 아이린이 이번 여정에 따라온다는 건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고, 방금 전 보여 준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여 준 후에도 여전히 따라오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디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아이린을 떼어 낼 명분이 없는 것이다.

"아이 너..."
"누가... 하악...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따라갈 거니까... 더... 하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마!"
"나더러, 지금, 아직 우리 마을도 못 떠났는데 그렇게까지 지쳐버린 애를 데리고 여행을 하라고? 내가 무슨 프런티어도 보이저도 아닌데."
"... 싫어..."
"뭐?"
"... 싫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아이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어, 아, 아, 아, 아아아아아이!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일어나! 사람들 다 깨겠다!"
"아아아앙! 으아아... 훌쩍... 나, 훌쩍, 따라가도 되는 거지? 그럼?"
"알았으니까! 알았으니까 일단 일어나라고!!!"
"훌쩍... 알았어... 헤헤헤헤..."

아이린은 일어나서 우디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 옷자락에 힘껏 코를 풀었다.

"아이!"
"헤헤헤헤... 나 울린 벌이다 뭐. 흥!"
"...쳇. 따라오기나 해. 못 따라오면 냅두고 간다!"
"...응!"

말은 매정하게 했지만, 그래도 우디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느릿한 걸음으로 마을 서쪽...이 아닌 중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에 도착하자 배낭은 옆에 벗어둔 채 둔치 쪽으로 뛰어내려가서 웃옷을 벗어 빨기 시작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산중턱 도시의 새벽이다.

"우디! 춥잖아!"
"... 아까 날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 아......"

옷을 대충 빨고 꾸욱 짜서 다시 걸친 우디는 이번엔 천천히 배낭을 벗어 둔 쪽으로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 우디의 상반신 전체에서 모락모락 아지랑이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우디가 다시 배낭을 짊어질 때에는 이미 웃옷은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머리만 그런 게 아니라고... 나..."
"... 그렇구나... 그런데 왜 말 안했어?"
"너 때문이다. 이 바보야."

라고 하면서 우디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고 아이린의 머리를 툭 치...려다가 멋적은 듯이 다시 손을 내렸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여자아이한테 꿀밤을 먹이자니 주먹이 간신히 닿을 것 같은데, 폼이 안 나잖아. 하아.

"...나...때문?"
"그래. 너 이거 무서워하잖아."

말을 이으며 우디는 주먹에서 집게손가락만 펼치고 아이린의 눈 앞에서 흔들었다. 아무 것도 없던 집게손가락 끝에 작은 불덩어리가 매달려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불이 겨우 구슬 크기만한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린은 무릎 부분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것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불은 다시 픽 소리도 없이 사라졌고, 아이린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이 되었다. 여전히 무릎은 떨었지만.

"...왜 그런 체질...인지 뭔지 된거야?"
"뻔하잖아. 미안하지만... 대화재 이후일 거야. 어차피 그 이전엔 기억도 없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니까."

대화재 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화염에 휘말린 단 한 명의 피해자는 기적적으로 아무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화염을 지켜본 다른 한 명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을 보았고, 결국 불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온 몸이 화염에 싸인 우디의 모습은 기억 깊은 곳에 봉인되었지만, 공포심은 남아서 끈질기게 아이린을 괴롭혔다.

... 그리고 화염에 휘말린 단 한 명의 피해자는, 그 사건 이후 자기 몸 속에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각성하게 되었지만, 그 기운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의 근원적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에 좌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디는 그 이야기를 아이린에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의식적인 제어가 가능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고, 겨우 알사탕 하나만한 불덩어리 하나에도 걷지도 못할 만큼 충격을 받는 아이린 앞에서는 도저히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런 괴로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몸으로 아이린의 곁에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우연히 국립연구원의 자연과학부에서 가르치는 원소학이라는 전공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디는 결심했다. 확실히 공부해서 자신의 몸 속에 살아(!) 있는 이 이질적인 기운에 대해 더 확실히 알게 된다면 어쩌면 이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만약 성공하면 다시 돌아와서... 실패는 생각하지 말자.

...그런 우디의 다짐은 첫날부터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배배 꼬이는 상황이 우디는 싫지 않았다.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린은 불을 보고 무서워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왔다.
죽을 만큼 무서웠을 텐데... 불 때문에 부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기등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방에 불도 못 피우고 캄캄한 방 안이 무서워서 울면서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호롱불 하나 피우지 못하던 아이인데...

...하지만 우디는 몰랐다.
아이린이 불을 무서워하게 된 "진짜" 이유를.
그리고 그 이유는 아이린 혼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아이린은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디의 그 체질을 알게 된 지금은 "그" 사실을 마음 속으로 저주했다. 아이린이 불을 무서워하는 것은 결국 자업자득이지만, 아이린의 그 실수 하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우디는 아이린을 원망-사실을 모르니 원망할 리도 없지만, 아이린은 우디가 그 사실을 알아도 자기를 원망하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했고, 그 때문에 아이린은 더욱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자학에 가까운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린 때문에 그런 체질이 되어버렸는데, 그걸로 모자라서 아이린 때문에 그걸 꼭꼭 감추고는 내색하지도 못한 채 속으로 삭이며 괴로워했을 터였다. 아이린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우디는, 겉으로는 시니컬해 보여도 속으로는 괴로움을 자기 혼자 짊어지고 내색하지도 않는 그런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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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올레샤 닷컴에서는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다 까발리고 시작합니다. 우하하하하. 

그리고 일단 저는 비축분 같은 건 키우지 않습니다. 한 편 정도 분량이 모이면 그냥 한번에 다 털어서 올리는 거죠. 끌끌끌.

설정집 같은 것도 있긴 한데, 일단은 비공개.
제목 원소학자 는, 아는 분은 아실지도 모르는 D&D 3rd의 서플리먼트 북인 Tome & Blood의 프레스티지 클래스인 Elemental Savant 에서 모티프를 따왔습니다. 다만, 이 세계는 이능에 대해 무지하고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따온 것은 어디까지나 모티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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