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궁금하던 것.

오랜만에 쥴양의 본가 Juris' Secret Garden에 갔다가, 비평이론을 정식으로 한학기 수강한 경험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이 하나 있어 자취를 남겨봅니다.

감상은 비평이 아닙니다. - 영도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말씀이지요. 쥴양이 남겨놓은 또 하나의 의문에 미리 대답하자면, 피를 마시는 새 퍼가실 분들에게도 영도님은 비평을 요구하셨고, 이번엔 원고지 200매 정도 분량이라는 제한까지 두셨더군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엔 틀이 없지만 비평에는 틀이 존재합니다. 감상이론 이라는 말은 없지만 비평이론 이라는 말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까요.

감상은, 그저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비평은, 그에 대한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만, <드래곤 라자>의 핵심 내용이 나올 듯 하니 안 읽으신 분은 넘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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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 "후치가 '나의 마법의 가을은 끝났다' 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라고 말한다면 감상이고, "작가는 '루트에리노 대왕의 고사', 즉 마법의 가을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작품 내의 시점과는 떨어진 역사적인 것으로 인식되도록 했으며, 동시에 의도적으로 이 작품의 플롯을 낙엽이 떨어질 무렵부터 첫 눈이 올 무렵까지로 한정한다. 그리고 후치의 자기인식이 이루어지는 '나의 마법의 가을은 끝났다'는 독백은 역사와 현실을 관통하여 독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각인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비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평에는 주어진 형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 작품인 바이런의 서사시를 비평하는 작업과,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장편소설을 비평하는 작업, 그리고 초현실주의 작품인 까뮈의 소설을 비평하는 작업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경우는 영도님의 소설을 "철저하게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씌어진" 작품으로 판단하고 비평하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감상에 기반하기에, 올바른 비평을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감상이 필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뿌쉬낀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경우 수많은 비평가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것을 매우 전형적인 러시아 낭만주의 소설문학으로 보는 시각과,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문학의 시초로 판단하는 시각이 공존하며, 뿌쉬낀 사후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해묵은(?) 논쟁은 여전합니다.

사실 뿌쉬낀의 예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한 작품을 보는 시각은 한 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일 겁니다. 당장 영도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시각도 천차만별이니까요. <퓨쳐 워커>의 예를 들어볼까요.

<퓨쳐 워커> 연재당시 사람들의 의견이 매우 분분했던 것으로 압니다. <드래곤 라자>의 재미를 기대했던 분들이 꽤 많았기에 <퓨쳐 워커>는 혹평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서야 <퓨쳐 워커>를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있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할 말을 잊었지요.

아니, 어떤 머저리들이 이 멋진 소설을 까내린거야.

제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라면, <퓨쳐 워커>는 <드래곤 라자>와는 다른 매력이 충분한 소설입니다. 아직도 그 멍한 결말부분이 제 머릿속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군요.

여기에서 두 번째, 감상과 비평에 관한 중요 포인트를 짚고 넘어갑시다.

"<퓨쳐 워커>는 <드래곤 라자>보다 재미가 덜하다." 라는 감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퓨쳐 워커>는 <드래곤 라자>보다 못한 소설이다."라는 비평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제 판단에 의하면-제 판단을 진리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드래곤 라자>는 사실주의 기법의 소설이고 <퓨쳐 워커>는 상징주의 기법의 소설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쓰는 방식 자체가 다른 두 소설의 우열을 비교하는 비평은 무의미합니다. 저 두 소설을 연관시켜 비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비교문학적 기법이 도입되어야 하겠지요.

감상은 주관적이고, 그것으로 그뿐입니다. 하지만 감상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분석하는 비평으로 가게 되면 그 비평 자체가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야기 분석에 어떤 논리를 적용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기존에 존재하는 비평이론을 참조하시거나, 혹은 나름대로의 분석 기법을 생각해 보시는 게 낫겠지요.

(기존에 존재하는 비평이론들에 대해서는 문학 전공 학부 고학년 과정이나 대학원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우시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군요. 제가 몸담고 있는 모 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는 러시아 구조주의 비평이론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만, 학부 4학년과 대학원 과정에만 해당 과목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저학년에서는 배우기가 힘든가 봅니다.)

그렇다고 비평이 거창한 것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비평은 자신의 감상을 기반으로 텍스트 자체를 분석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매우 거친 논리로 말하자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비평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치학적인 접근도 가능할 것이고,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를 보드게임과 연관지어 세상의 원리를 축약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겁니다(이것도 제가 고려하고 있는 비평방식의 하나에요.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자신이 비평하고자 하는 소설과 결합시켜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것도 훌륭한 비평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이 장황하고 맥락도 불분명한 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감상은 작품을 대했을 때 일차적으로 느낀 주관적인 생각들의 모음이고, 비평은 그 감상을 기반으로 작품 자체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2. 감상은 주관적이고, 따라서 비평 자체도 필연적으로 주관적이지만, 비평 과정은 충분히 객관적이어야 한다.

3. 따라서 비평을 위해서는 작품의 올바른 감상을 위해 많이 읽으면 많이 읽을 수록 좋겠지요?

비평에 대해서 어설프게 한마디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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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love 2005. 10. 12.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