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을 내는 그대에게 에서 이어집니다.


케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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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에 거른 밀가루의 본질은 밀가루이다. 하지만, 체에 거르지 않은 밀가루로 구운 케이크와 체에 거른 밀가루로 구운 케이크의 완성도는 확연히 다르겠지.

등장 인물의 사상은 작가 자신의 것이다. 하지만 등장 인물의 캐릭터로 한 번 거른 작가의 사상이어야 한다. 이걸 실패하면 거품덩어리 케이크가 되는 것이겠지.
(이것을 극대화한 '자동기술법'이라는 소설 작법이 있지만, 본인도 그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지라 그것까지 다룰 능력은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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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의도하지 않았다면 서술은 최대한 간결히. 독자는 "어딘가에서 아련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려 온 벚꽃잎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그는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봄을 보았다." 따위 문장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 창피하다 -_-a)

물론 만연체의 대가 고골 같은 예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그 방면의 천재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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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독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글을 한 번 읽어보자. 누구나 자기 자식이 예뻐 보이는 법이지만, 그렇기에 가끔은 냉정하게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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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체에 거르지 않은 밀가루의 비유는 번역에서의 의역논쟁에도 일조할 듯 하다. 의역입네 하고 으스대는 애니메이션 자막장이 모씨(g 모 채널에서 항상 씹히는 그 사람 맞습니다)의 번역을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이어이, 의역을 번역자 말투로 하면 어쩌자는 거지?"

의역은 필요하지만, 그따위 번역은 의역에 대한 모욕이다. -_-

주2. 캐릭터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로 캐릭터에게 말하게 하는 작가들도 의외로 많다. <드래곤 라자>의 후치는 작품 후반부에서 그런 모습을 종종 보여서 안타까웠다. 물론 <폴라리스 랩소디>부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게 발전 아니겠는가 :)

<마법서 이드레브>의 로안이 또 좋은 예가 될 듯 하다. (어떤 방향인지는 말 안해도 뻔하다)

주3. 이거 어쩌다보니 내 이전 글이었던 텍스트론의 재탕이 될 것 같(...)
by hislove 2004. 12. 22.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