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저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에 만연한 괴악한 정서를 한탄하고 있는 저 15계명은, 대한민(?)국의 헛점 투성이 법률안과, 미치고 자빠진 뒤에 개념을 아이리버랑 같이 뒷산에 파묻은 판사 잡놈들, 그리고 그거랑 전혀 다를 바 없는 수사관 잡배들에 대한 "대안 있는" 비판입니다.
----------------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커멘트들을 달아보겠습니다. 번호는 위에 트랙백한 원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며, 따라서 비교는 원문을 같이 띄워놓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 2. 금치산과 한정치산에 대한 개념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알콜이나 약물중독으로 온전한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경우 그 상황에 처한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지를 밝혀 오히려 가중처벌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3.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공갈협박과 살인미수 혐의를 합쳐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4. 5. 3번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면 법정모독죄를 물어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문제는 저딴 유아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용납할 뿐더러 오히려 두둔해 주는, 머릿속에 허여멀건 쌀뜨물만 가득찬 판사놈이겠지요. OTL
6. 여기선 그냥 한마디 외쳐주겠습니다. "닝기리 씹숑 -_-" 이건 사회통념에 관계된 문제라 당장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게 서글프기만 합니다.
7. 후우.
8. 이건 4번 5번과 마찬가지. 그들에게 가족이 없다면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우리가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젠장. 약자의 가족이 되어줄 수 없는 나라 따위.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9. 6번과 마찬가지.
10. 오오. 위대한 군중심리. 집단범죄 가중처벌법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매우 절실하게.
11. 당신의 자녀가 소중하다면 남의 자녀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덮어주는 건 결코 당신의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자녀를 망치는 행위입니다.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간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죄를 짓지 않을 거 같습니까?
마찬가지로 치부에만 급급한 학교 교육청 기타 상급교육기관 이 닝기리 씹ㅤㅆㅛㅇ 마피아들아. 더 이상 교육계 물 썩게 만들지 말고 다 꺼져버리란 말이다.
12. 여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수사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지켜주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인권입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최대한 쾌적한 환경에서 최대한 마음 편히 증언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첫째, 이런 사건의 심리 과정에서는 공인 자격증이 있는 카운셀러나 심리학 박사, 혹은 정신과 의사... 아무튼 이 방면의 전문가를 국선 변호사처럼 피해자와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하 카운셀러로 통일) 카운셀러의 역할은 심리 과정에서 최대한 피해자의 인권과 심리상태를 보호하고, 더 큰 트라우마를 입지 않도록 지켜 주는 일입니다.
둘째, 피해자가 가장 편한 방법으로 증언할 수 있도록 제반 법안을 개정해야 합니다. 우선, 녹취 증언의 증거력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심한 정신적 상처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에는 좋은 정신치료 기관이 없어 외국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현행법상 심리 과정에서 반드시 피해자가 직접 경찰이나 검찰에 출두해서 증언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체위는 둘째치고 "가해자가 어떤 자세로, 몇 도 각도로 삽입했나요?" 같은 것까지 물어본다는 건 이미 유명하죠. (Kill Mother-fucking Assholes.) 특히 피해자가 10대 미만의 유소아일 경우는 정말 대책없습니다. 이 경우 카운셀러를 대동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녹취 증언을 남기고, 그것을 수사기관에서 증거물로 인정해 준다면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녹취 증언의 증거력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직접 출두하지 않아도 심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이 부분의 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13. 피해자가 "평소 아는 사이라서 오히려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 라고 주장할 수 있고, 오히려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젠장. 역시 판사가 개념을 챙겨야죠.
14. 여자가 방안에 남자를 들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 그래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 차 한잔 하라고 들였을 수도 있는 겁니다.
수사관들에게 "당신(수사관이 남자라고 가정합시다)이 아는 여자를 방에 초대하는 이유는 같이 떡치자는 것 밖에 없습니까? 이 씨발로마야?"라고 반문하고 싶은거죠.
15. 이건 지방자치제가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시의 집단 이기주의를 박살내고, 사법기구만이라도 대전 쯤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런 사건 법원 가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대법원 가게 됩니다. (사건심리가 길어질수록 피고인한테 유리하거든요 -_-) 제주도 쯤에서 이런 사건 하나 터지면 사건 해결될 때까지 한 5년 정도 고등법원 대법원 왔다갔다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2번의 대안을 채택한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거리의 문제는 남습니다.
물론 이게 대안은 못됩니다만, 심리적인 거리라는 거,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전국 모든 국민들이 수도권과 동일한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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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는대로 몇 가지 적어 봤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대로 추가하겠습니다. 또한 이 열 다섯가지 분노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꼭 이 15항목과 상관 없더라도 이 나라에서 성폭력 범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개선방안이 생각난다면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한 열흘 가까이 집에 쳐박혀서 아무짓도 안하고 (당연히 학교도 째고) 완전 폐인모드로 지냈네요. 부모님이 시골 가 계셔서 가능한 짓이기는 했습니다만 (긁적)
어제 저녁때는 기운을 좀 내서 나다녀볼까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방문연락을 받아서 또 집을 지키고 앉아있다가 (중간생략) 해서 결국 저녁 때 전대인 모임에 나가서 엘센옹과 달꿈언니, 은언니와 아루바옹, 이렇게 다섯이서 밥먹고 보드카페에서 Apples to Apples 좀 돌리고 술도 좀 마시고...
대충 정신 차렸습니다. 전화기에는 급문자가 쌓여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은 산더미네요. (미안하다 친구야 -_-)
오늘은 일어나고 나니 이 시간이라서, 대충 일부터 해놓고 밀린 연락은 내일 다 해치워야겠군요. 후우-
어딘가 먼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여건은 되지 않고(정확히는 돈이 없고-_-), 우울하고 우울한 나날에 어느 정도 기분전환은 되었습니다. 무기력증도 이정도면 병인데...
1. 노래방을 얼마나 자주 가시나요? 7000원에 한 시간, 그리고 그 이후 지쳐 쓰러질 때까지 서비스가 들어오는 신림 9동의 모 노래방 덕분에 그래도 한달에 한 번 이상은 가주는 편입니다.
요새는 집 근처에서 한곡에 300원 하는 코인 노래방 기계(그것도 태진 질러넷! 에다가 매달 꼼꼼히 업데이트가! ;ㅅ;)가 있는 게임센터를 발견해서 애용하는 중입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가서 두 곡 정도 가볍게 불러주네요.
2. 애용하는 노래방 기계는? 누가 뭐래도 태진 질러넷.
3.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들은?
너무 많은데... 일단 꼽자면
써루악군과 태순이(빰니마 -ㅅ-)랑 셋이 불렀던 <빙> - 최고의 캐스팅이었심 ;ㅅ;
윤종신의 팥빙수를 개사해서 부른 <보신탕>
<まほろDEマンボ> 1인 모창
아 노래방에 이 노래도 있었구나! < Que Sera Sera >
일단 선곡하면 모두가 불타오르는 < Emerald Sword >
평소에는 사이가 안 좋았던 친형님이랑 둘이서 거의 완벽하게 호흡을 맞췄던 <꿈의 대화> (대학가요제 입상곡으로 남자 듀엣곡입니다)
Steel Heart의 < She's Gone >도 기억에 남고...
그 외에도 꽤 많습니다. 위의 곡들은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기억에 남습니다".
4. 이 노래는 꼭! 노래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노래들은?
DC Talk 의 < Free at Last >, < Colored People >, < So Help me God >, < Jesusfreak >, < Wanna Be Loved >, < Supernatural > (가망없는 거 안다 ;ㅅ;) Jars of Clay의 < Liquid > , < Flood > (역시 가망없는 거 잘 안다) Astrud Gilberto의 < Girl from Ipanema > Basia의 < Astrud > (이 노래는 Basia가 Astrud Gilberto에게 헌정한 곡이다) 카우보이 비밥 OST 3에 있는 희대의 명곡 < the Real Folk Blues > Wolf's Rain OST 1에 있는 < Could you Bite the Hand? > Noir OST에 있는 ALi Project의 <코펠리아의 관>과 <적과 흑> Tales of Eternia - The Animation OP / ED인 <하늘로 통하는 다리>, < I'd like you to touch me > Simon & Garfunkel의 < Kathy's Song >, < America >
이 외에도 자안~ 뜩 있지만... 대부분 가망없는 거 안다 ;ㅅ;
5. 바톤을 넘겨줄 사람은
사실 아루바옹이 이거 해주시면 정말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제 사견일 뿐, 언제나 강요는 아닙니다. 아빠와 (*심의삭제*)는 정말 명곡이었거든요 ;ㅅ;
요즘 함께 노래방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네. 사실 저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seena 님 말고도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저 글에 담긴 기본적인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블로그는 자율적인 공간이며,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기 블로그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기를 원할 겁니다.
내가 원해서 개설하고, 내가 원해서 운영하는 블로그라는 공간에서조차 어떤 포스팅을 강제당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저 바톤 넘기기를 받아서 이미 포스팅을 두 개 걸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제 주위 분들에게 바톤을 넘겼습니다. 어째서?
저는 저 두 개의 주제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서 포스팅을 남겼고, 제게 바톤을 받으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무언가 재미있는 꺼리"를 "단순히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걸 받는 사람이 그걸 그냥 무시하든, 재미없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 바톤을 받아서 또 하나의 포스팅을 생산하든 관계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 저 같은 건 아니네요.
커뮤니케이션은 화자보다 청자를 중시해야 하며, 그렇기에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대부분의 경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제 입장을 밝혀두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바톤 같은 거 넘어오는 거에 전혀 부담 같은 거 갖지 않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얼마든지 넘기세요. 하지만!
받은 바톤 가지고 뭘 하든 그건 제 맘입니다.
하기 싫으면 안합니다. 그리고 안한다는 언급도 안하고 넘어갑니다. 그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자신이 넘긴 바톤이 강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제발 꿈 깨십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저는 마음에 담은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블로깅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까지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는 건 질색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바톤에 대해 저런 입장을 견지한다는 의미는, 다른 분들께도 제가 무언가의 포스팅을 강제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건 제 의도를 오해하시는 것이며, 저는 제가 당하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도 제게 그런 걸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 준비한 카테고리, Real Peoples' Blues 입니다. (카우보이 비밥의 Real Folk Blues에서 음차)
마법교육기관 유그드라실 소모임, 노문이슬반 연극집단 РТ-СУС(러시아 극장이 정신나가 버렸다-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약어), 모 2618동(...), 화엠동, 그리고... 그리고...
특히 요즘 들어 유그동 사람들이 더욱 생각나는군요.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금 열심히 드림워커와 유조아에 마법교육기관 유그드라실 언리미티드를 연재중이신 라그님, 매주 한 번 유그OR을 통해서 만나는 스크러양과 라디네님, 그래도 가끔 이글루스를 통해서나마 근황을 알 수 있는 마족님, 그리고 역시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갖고 있지만 포스팅이 거의 없어서 거의 근황을 알기 어려운 에린님과 병각군...은 그래도 가끔 살아 있다는 흔적을 알 수 있긴 하네요 :)
1. 갖고 있는 영화 갯수. -Singing in the rain(국내명 "사랑은 비를 타고"), the Phantom of the Opera(국내명 "오페라의 유령"), the Sound of Music, 이렇게 DVD 소유. VCD도 몇개 있는데 기억이 잘 안나고, 디빅 파일로 구워서 갖고있는 건 뺍시다.
2. 최근에 산 영화. - the Sound of Music. 7700원이길래, 원래 갖고 싶었기에, 아무 미련없이 샀다.
3. 최근에 본 영화. - 영화관에서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이라면 말 다했죠? -_- 빌려다 본 영화로 세렌디피티가 그나마 가장 최근에 본 영화로군요.
4. 즐겨보는 영화 혹은 사연이 얽힌 영화 5편은?
쇼생크 탈출 : 팀 로빈스의 열정보다 모건 프리먼의 잔잔함이 더 깊이 마음에 와닿았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할만하죠.
벤 허 : 정녕 이 영화가 1950년대 영화가 맞단 말인가! 쇼생크 탈출 전까지 제 인생 최고의 영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걸출한 괴작입니다.
트루먼 쇼 : 혼자 영화관 가서 보면서 울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지요.
데드 얼라이브 : 살점이 튀고 팔다리가 분리되어 날아다니고 피가 한꺼번에 2톤이 쏟아져내리는 상황에서 배꼽을 잡고 구를 수 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습니까?
고어 영화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걸출한 괴작 B급 영화입니다.
이거 감독이 피터 잭슨(누군지 모르신다고요?)이라면 과연 몇명이나 믿을런지...
쇼킹 아시아 : 기독교 서점 가서 얻은 공짜표 두장을 들고, 샤다이랑 둘이 가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저 무념입니다. 이런 것도 사연이라면 사연이겠지요? (...)
5. 바톤을 이어받을 5분은
솔직히 말해서, 전 강권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싫으면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 의미를 마음에 담아서, seena님, 써루악님, sHiro님, 달꿈님, 그리고 파란오이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서사구조 비평입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 본작을 안 읽으신 분은 절대 보지 마세요.
0. 들어가기 전에
작가 이영도는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비하하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매우 강렬하지만 훈계하려 하지 않는 그의 커다란 자의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던지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저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 하나를 더하고 싶어할 뿐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분명 장르적으로 환타지에 해당되며, 수많은 한국적 요소들이 가득하다. 한국 설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 분명한 도깨비는 인간을 킴이라고 부르며, 말은 단순히 창작의 질료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대 아라짓 어라는 개념을 동반한다[각주:1]. 정형화된 환타지[각주:2]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요소들을 바라보며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사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독자들이 "한국적 환타지의 가능성" 운운하며 극찬하는 가운데에서도 이영도는 그저 콧방귀만 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사실 그건 당연하다.
그라탕에 냉이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걸 "한국적인 그라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도우를 밥으로 만든 라이스피자를 "한국적인 피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라탕을 냉이로 만들든 두릅으로 만들든 그건 그라탕이며, 피자 도우를 밥으로 하든 죽(!)으로 깔든 그건 피자이다. 그라탕은 밥을 지어 모짜렐라 치즈를 곁들여 오븐에 구워낸 음식이며, 피자는 도우를 깔고 그 위에 여러 가지 토핑을 얹은 뒤에 토마토 소스와 모짜렐라 치즈로 마무리한 뒤 오븐에 구워낸 음식이다.
이영도의 글은 "소설"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자면 "환타지 소설"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료들을 사용하는 데 점점 더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가장 고집 센 보수주의자들을 제외한" 많은 독자들의 입맛에도 맞는 글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 물론 보수주의자들에게 고집은 세끼 식사보다 중요하니까 그들은 무시하자.
이영도의 글을 규정하는 서사구조는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드래곤 라자>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글은 기교적으로는 점점 더 완성되어 왔지만 기본적인 서사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는 후치가, 율리아나 공주가, 케이건 드라카가, 그리고 지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 움직임의 끝에는 단지 개인적인 단위로 끝나는 무언가가 아닌, 범 세계적인 규모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핸드레이크의 좌절, 하이마스터의 선택, 천지척사, 그리고 장생.
이 글에서는 <눈물을 마시는 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이미 그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까지 완결된 마당에 너무 늦은 감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피를 마시는 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전작이자 그 메타텍스트인 <눈물을 마시는 새>가 필연적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눈물을 마시는 새>만 갖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올 것이 뻔하니 처음부터 <눈물을 마시는 새>를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인물분석은 생략한다. 하지만 "생략된 인물분석 결과"가 여기저기 글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짚어둔다. 결국 이 글은 자기만족을 위한 글이며, 별로 독자를 배려하고 있지 않으니까.
1.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이영도는 글의 서사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장치를 준비하고, 그것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작가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서사구조는 두 문장과 하나의 놀이로 요약된다.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하나가 셋을 부른다." 그리고 '윷놀이'가 그것이다.
이야기 전반부가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로 요약된다면, 후반부는 "하나가 셋을 부른다."로 요약된다.
상대해야 할 하나가 있다면, 그것을 상대할 셋은 각자의 역할분담이 정해져 있다. 길잡이는 상대할 하나에게 일행을 인도하며, 대적자는 그 과정에서 방해되는 상대들을 때려눕힌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관리하며 여러 가지 특이한 능력으로 일행을 보조하는 것이 요술쟁이이다[각주:3].
그리고 셋과 하나의 관계는 "합치면 넷"이라는 구조상 보통 네 선민종족이 그 자리에 각각 하나씩 대입된다. 이야기의 시초인, 신명을 가진 나가 아스화리탈 세파빌(화리트)을 안전하게 하인샤 대사원으로 구출해 오는(이것도 상대하는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구출대의 삼인은 각각 인간과 도깨비, 그리고 레콘으로 구성된다. 한계선 이남의 나가가 키보렌을 확장하기 위한 대확장 전쟁을 벌였을 때 북부에서는 세 선민종족이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갇혀 있는 어디에도 없는 신을 일깨우기 위해서(물론 이것도 그를 "상대하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발자국 없는 여신과 자신을 죽이는 신, 그리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 모여야만 했다.
즉,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서사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대명제 중 하나는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둘에 관해서는 뒤에서 언급한다.
2. 길잡이 - 케이건 드라카 / 인간 / 발자국 없는 여신
케이건 드라카가 구출대의 길잡이로 선택된 이유는, 그가 나가와 키보렌에 관한 한 북부인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일행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길잡이는 누구보다도 상대할 대상과, 상대하게 될 장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케이건 드라카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길잡이는 여정의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길잡이"라고 한다.
세 명의 신들 중 길잡이는 발자국 없는 여신일 것이다. 한때 여신의 신체였던 요스비는 케이건 드라카의 친구였다.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는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그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만, 요스비는 케이건 드라카와 신뢰 관계를 유지했으며(그것도 나가가!), 그를 찾아가는 대신 그가 자기 발로 발자국 없는 여신을 찾아오도록 획책했다.
사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과 발자국 없는 여신 중 누가 길잡이이며 누가 요술쟁이인가에 대한 문제는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나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장소까지 모두를 이끈 것은 발자국 없는 여신이니까. 스스로 찾아가는 대신 모두를 불러들였기에 그렇다.
3. 대적자 - 티나한 / 레콘 / 자신을 죽이는 신
길잡이나 요술쟁이와 달리 대적자가 할 일은 명확하다. 방해되는 것을 다 때려눕히는 게 대적자이고, 최후의 대장간에서 무기를 받아든 순간부터 그것을 놓는 순간까지 언제나 전사인 레콘은 대적자에 잘 어울린다. 50년쯤 후에 영웅왕과 거의 동급으로 여겨지는 신화적 존재가 되는 티나한, 자기 키의 두 배쯤 되는 철창을 들어 보이며 무기야말로 레콘의 성(姓)이라고 말하는 티나한은 정말로 모범적인 레콘이다. 대적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을 죽이는 신이 대적자인 것도 너무나 명확하다. 과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의 소멸에 사용된 것이 그의 불이었고, 그가 하텐그라쥬의 심장탑 51층까지 오면서 행한 파괴행위는 그의 대적자로서의 면모를 잘 부각시킨다. 그는 담백하고 과격하다. 그런 그가 가장 비폭력적인 선민종족인 도깨비를 가호하는 신이라는 점은 정말로 아이러니이지만.
4. 요술쟁이 - 비형 스라블 / 도깨비 /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나가 잡는 것은 도깨비라고 한다. 키보렌에서 비형이 한 일은 요술쟁이의 진면목이라고 할 만 하다. 나가 정찰대의 눈을 속이고, 일행의 취사를 책임지며, 비오는 날 급조된 피난처의 온기를 담당하며,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불을 밝혀 일행을 보조하는 일이 그가 한 일이다. 그는 일행을 이끌거나 직접 방해자를 대적하지는 않지만, 그가 없으면 일행이 매우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요술쟁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다.
일행을 북부군이 있는 하텐그라쥬까지 안내하는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을 길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법 하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생각하면 그는 길잡이보다는 요술쟁이에 어울린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형 스라블이 딱정벌레에 일행을 실어나른 것처럼,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아주 특별한 방법을 통해 일행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5. 하나는 셋을 부른다. - 륜 페이 / 나가 / 어디에도 없는 신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고 한다. 이것은 상대할 필요성이 있는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반드시 셋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그 하나가 나타나면 그 하나를 상대하기 위한 셋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선언과 "하나가 셋을 부른다."는 선언은 본질적으로 같다.
화리트를 구출하기 위해 셋으로 된 구출대가 조직되었다(실제로 구출해 온 것은 륜 페이였지만). 발자국 없는 여신의 힘을 상대하기 위해 북부는 나머지 세 신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한다. 갇혀 있는 어디에도 없는 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다른 세 신이 모여든다.
셋이 하나를 상대하기 때문에 하나의 존재는 셋을 모여들게 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온전히 "셋이 모여들어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마침내 셋이 모였고, 셋은 하나를 일깨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넷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서사구조 전반을 지배하는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6. 윷놀이의 모티프
"말 잘했다. 윷놀이는 윷가락 네 개로 하는 거다!"
"네, 셋은 부족하지요."
윷가락 세 개로 윷놀이를 해봤자 지리멸렬할 뿐이다. 하나의 신이 갇혀 있었기 때문에 세상은 변화를 잊고 천 년의 정체에 빠져든다. 어디에도 없는 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셋이 모여든다. 그리고 윷가락은 다시 넷이 되었다.
넷이 되어야 놀 수 있다. 작가는 윷놀이의 모티프를 차용해서 이야기의 끝을 깔끔하게 마무리짓는다. 하나가 셋을 부르고, 셋이 하나를 상대하지만, 하나는 배제되지 않고 셋과 합쳐져 넷이 된다. 그리고 윷놀이는 계속된다.
7. 천지척사에서 장생에 이르기까지 - <피를 마시는 새>로의 연결고리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세 신은 다른 한 신을 다시 윷놀이판에 끌어들여서 윷놀이를 이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피를 마시는 새>에서 500조 이상의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면서도 서로 멸망하지 않고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바둑의 화국, 그것도 무한의 바둑돌이 죽어나가는 장생[각주:4]이라는 이름의 자살패로 치환된다.
셋은 하나를 상대하지만, 결국 넷이 된다. 화국은 반상 맞은편의 상대방이 살아 있어서 승부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보장한다.
바둑은 윷놀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놀이이다. 그 점에서 바둑은 재생산된 변화의 시대를 나타내기 매우 적합한 소재로 생각된다.
이렇게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피를 마시는 새>의 시대로 이행한다. 더 자세한 건 다음 비평문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피를 마시는 새>의 서사구조 관련 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8. 무한한 변화의 장
이렇게 졸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글이 "빌어먹을 가필"이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빌어먹을 가필"조차도 작품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굳이 이런 짓을 한다.
이것이 내가 해석한 <눈물을 마시는 새>이고, 다른 누군가의 동의를 구할 생각 같은 건 없다. 작가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해석된 작품은 나만의 것 아니겠는가.
주1. 고대 아라짓 어의 구성은 고대 한글의 음차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는 한때 변화했지만, 천 년 넘는 세월동안 언어가 고정되어 있었다는 시우쇠의 폭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고대 아라짓 어의 시스템은 단순히 서술의 질료로서 언어를 이용하는 것을 벗어나 "한글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글에 이용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모든 소재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갖고 있는 걸 갖다 쓴 것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실제 고대 한글을 완벽하게 표기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겠지만, 그가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내는 데는 음차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절대 결벽주의자가 아니다. ) [본문으로]
주2. 사실 "정형화된 환타지"라는 말 자체가 모순된 선언이다. 환타지는 말 그대로 환상문학을 의미하며, 환상에는 어떤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정형화된 환타지"라는 표현 자체가 정형화된 채 정착된 지금 시점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본문으로]
주3. <피를 마시는 새>에서 이라세오날을 향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오만하게 걸었던 레콘 지멘이 길잡이, 이라세오날을 향해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무차별 학살"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레콘 히베리가 대적자, 그리고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다시 올려보내지."라고 말하며 이라세오날을 먼 하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려버리는 레콘 쵸지가 요술쟁이였던 구도에서 착안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주4. 장생이라는 이름의 자살패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장생은 일반적인 패와 달리 팻감 없이 서로 무한정으로 상대방의 사석을 늘리는 게 가능한 기이한 구조로, 어느 한 쪽이 패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바둑이 무한정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사석은 엄청나게 쌓이지만, 바둑 자체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500조 이상의 사람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희망에 매우 잘 부합하는 상황이다.
(바둑 대국에서 장생이 발생할 경우 한국 바둑 규칙에서는 바로 무승부 처리된다.) [본문으로]
01. 좋아하는 숫자 : 6, 28, 496, 8128...... (참고) 02. 좋아하는 요일 : 특별히 없다. 03. 좋아하는 음료수 : 음료수...라기는 애매하지만 마시는 농후발효유. 04. 좋아하는 과자 : 감자 함유량이 50%가 넘는 과자는 다 좋아함 05.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 그다지 없음 06. 좋아하는 색깔 : 녹색 카테고리에 속하는 색깔 전부. 07. 좋아하는 캐릭터 :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 장로 조시마(이상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소피야 세묘노브나, 두냐 로마노브나(이상 죄와 벌), 흘레스따꼬프(검찰관), 사모 페이, 케이건 드라카, 티나한, 비형 스라블, 시우쇠, 오레놀 대덕, 라수 규리하, 어디에도 없는 신(눈물을 마시는 새), 대호왕, 정우 규리하, 탈해 머리돌, 틸러 달비, 팔리탐 지소어(이상 피를 마시는 새)... 아윽 조금만 생각해도 이렇게 많이 쏟아지면 어쩌란거야 OTL 08. 좋아하는 날씨 : 햇빛 쨍쨍 땀이 비오듯 쏟아질 법한 뜨거운 여름날씨, 그리고 그 직후 미친 듯이 때려붓는 폭우. 둘 다 좋아함. 09. 좋아하는 꽃 : 특별히 선호하는 꽃은 없습니다. 10. 좋아하는 나무 : 싫어하는 나무라면 아카시아가 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도 없군요. 11. 좋아하는 드라마 : 허준, 상도 등의 "몇년전" MBC 스타일 사극들. (다모나 대장금은 취향에 안맞아서(...)) 요새는 불멸의 이순신 정도? (어쨌든 현대적인 스타일의 사극 말고는 별로-_-) 12. 좋아하는 만화영화 : 글쎄(......) 너무 많아서 꼽기가 힘들지만, 일단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전부 다 괜찮았음. 13. 좋아하는 노래장르 : 퓨전 재즈, R&B, 전파계... 아어 너무많아 ;ㅅ; 14. 좋아하는 가수 : Astrud Gilberto, Steve Conte, DC Talk, 서영은, 임재범, 박완규, 사카모토 마아야, 가브리엘라 로빈 15. 좋아하는 연기자 : 임현식. 그는 최고의 중견 조연이다. 16. 좋아하는 영화배우 : 설경구, 조재현, 모건 프리먼, 팀 로빈스...... 17. 좋아하는 외국연예인 : (성우도 연예인으로 쳐주세요) 타무라 유카리, 하야시바라 메구미, 노토 마미코 18. 좋아하는 과일 : 귤 19. 좋아하는 옷 스타일 : 컬러(collar)가 있는 옷이라면 대충 OK. 겉옷에는 주머니가 많아야 한다. 20. 좋아하는 과목 : 러시아문학, 구조주의 비평 이론, 매체비평. 21. 좋아하는 오락 : FPS, 격투게임, RTS를 제외하면 대충 다 좋아함 22. 좋아하는 만화 :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양의 노래, 쿠로가네(흑철) 등 토우메 케이 만화는 다 좋아함. 그 외에도 아다치 미치루나 우라사와 나오키, 타카하시 루미코, 타카하시 신 등의 만화도 좋아함. (사실 웬만한 건 거의 다 좋아함 :)) 23. 좋아하는 TV프로그램 : 온게임넷과 MBC게임의 스타리그(보는 건 좋아하는 편) 24. 좋아하는 남성상 : 기타노 유지(좋은사람),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25. 좋아하는 여성상 : 혼다 토오루(후르츠 바스켓), 소피야 세묘노브나(죄와 벌) 26. 좋아하는 음식 : 닭, 감자, 피자(그러나 전에도 말했지만 치킨 포테이토 피자는 질색 -_-) 27. 좋아하는 성격 : 기타노 유지. 최고! 28. 좋아하는 선생님 : 특별히 없음. 조금씩 멋진 선생님들은 많았지만 감동을 준 선생님은 없었다고나 할까(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 29. 좋아하는 친구 : 샤다이 박정호. -_-b 그리고 H 전대의 멋진 지인들과 그 외에도 멋진 이글루스의 이웃들 :) 30. 좋아하는 브랜드 : 없어용. 31. 좋아하는 악세사리 : 핸드폰(......) 32. 좋아하는 남자 : 좋아한다는 기준이 (...)라면 없음. 아니라면 친구들은 다 좋아해용. 33. 좋아하는 여자 : 좋아한다는 기준이 (...)라면 비밀. 아니라면 친구들은 다 좋아해용. 34. 좋아하는 여자머리 : 봅커트, 소바쥬, 늘어뜨린 생머리, 포니테일, 양갈래머리, 땋은머리, 양갈래 땋은 머리 등등... 어울리기만 한다면 OK. 하지만 하나 고르라면 허리 아래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검은 생머리(관리하기 힘들다는 건 이미 고려대상 아님) 35. 좋아하는 남자머리 :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는가? 36. 좋아하는 술 : 술보다는 사람이 좋다. 좋은 사람이랑 마시는 술이라면 뭔들 사양하겠는가? 37. 좋아하는 안주 : 노가리(아니 그 마른안주 노가리 말고(...)) 38. 좋아하는 분위기 : 노래방에서 다 지르고 죽자로 가는 분위기도 좋고, 술자리에서 즐겁게 노가리까는 분위기도 좋고... 여하튼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은 게 아니겠는가 :) 39. 좋아하는 영어단어 :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아는 사람은 아는 바로 그 단어) 40. 좋아하는 여행지 : 모스크바, 상끄뜨 뻬쩨르부르크, 이르꾸쯔끄(바이칼 호수 연안도시), 끼예프 등 구 소련 연방의 유서 있는 도시들은 꼭 가보고 싶다. 41. 좋아하는 차 : 모과차, 허브티 중 향기가 산뜻한 몇 종류. 42. 좋아하는 책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죄와 벌>,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 외에도 좌르륵(...) 43. 좋아하는 노래 : Supernatural, Jesusfreak, Wanna be Loved (이상 DC Talk), Rain (Steve Conte - Cowboy Bebop OST 1), K (Bump of chicken), Girl from Ipanema(Astrud Gilberto, Stan Getz) 44. 좋아하는 앨범 : Cowboy Bebop OST, Girl from Ipanema, Supernatural, Jesusfreak 45. 좋아하는 영화 : 쇼생크 탈출. 아억 최고 ;ㅅ; 46. 좋아하는 시간 : 특별히 없다. 47. 좋아하는 계절 : 여름. 뜨거운 여름. 48. 좋아하는 말 : Carpe Diem!, Que Sera Sera, Insh Ala. (...) 49. 좋아하는 포탈 사이트 : 없다. 검색은 구글, 취미생활은 이글루스.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 50. 내가 가장 좋아하는것은 : 좋은 사람들과 지내는 소중한 시간.
Thinks far with vision 목표를 높게 잡는다. Easily influenced by kindness 친절에 쉽게 감동한다. Polite and soft-spoken 정중하고, 부드럽게 말한다. Having lots of ideas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Sensitive 예민하다. Active mind 활동적인(개방적인) 마음. Hesitating 결단을 망설인다. Tends to delay 지연하는(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Choosy and always wants the best 항상 최고를 원하고, 고른다. Temperamental 변덕스럽다. Funny and humorous 재미있고 유머감각이 있다. Loves to joke 농담을 좋아한다. Good debating skills 토론 능력이 좋다. Talkative 말이 많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Daydreamer 몽상가. Friendly 친밀하다. Knows how to make friends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 지 알고 있다. Abiding 변치 않는다. Able to show character 개성을 잘 표출한다. Easily hurt 쉽게 상처받는다. Prone to getting colds 감기에 잘 걸리는 경향이다. Loves to dress up 옷을 갈아입는 것을 좋아한다. Easily bored 쉽게 지겨워한다. Fussy 까다롭다. Seldom shows emotions 좀처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Takes time to recover when hurt 상처입었을 때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Brand conscious 강한 흔적을 주는 의식. Executive 실천적이다. Stubborn 고집이 세다.
매냑님이라든지 아드님, 다운군, 달꿈님, 페디군, 써루악군... 등 제게는 각별한 인연인 H 전대 분들이 대표적이겠군요. 이 외에도 멋진 지인은 많지만 넘어갑시다 :) (그러니까 제가 꼽지 않았더라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 제프님이나 광열님, 신나님, 왈츠님, 천유님, 군대간 핌군, 현지님, 마족님, 병각군, (송)수연이, 아루바옹, 쥴양... 등등 모두 멋진 지인이에요.)
그리고 이글루스의 철학이 상당히 마음에 들더군요.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살가우면서도 합리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글루스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이 블로그는 반쯤은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저는 저를 알고 계시는 분들만을 고려해서 글을 쓰고, 가끔은 그분들조차 고려하지 않고 그냥 쓰고 싶은 걸 마구 갈겨댑니다.
저는 제 글을 통해 누군가 변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즐거워해줄 수 있는 주변 분들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밸리 타고 와서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생각 외로 꽤 계시는 듯 합니다.
와 주셔서 글 읽어 주시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 그건 제 멋진 지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하지만, 제 블로그의 속성은 처음 개설 당시나 지금이나 나 자신을 위한 공간이자 내가 아는 사람들만을 고려하는 공간입니다. 매우 사적이며 매우 편향적이며 매우 왜곡된 공간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속성은 변태에 가깝습니다. 에로게를 좋아하는 극렬 원리 보수주의 크리스챤이라는 말에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도 저랑 동류(변태라는 점에 한정해서)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저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블로그에서 공리를 기대하시는 건 오아시스에서 베료자(시베리아 산 자작나무)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글은 제 사견이며, 제가 아는 사람, 그리고 저를 아는 사람을 위해서 기록될 뿐입니다. 혹은 저 자신만을 위해서.
저를 모르는 사람의 저작에 대한 비평문이 간혹 실리거나 실릴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 경우는 그저 제 지적 허영심을 만족하기 위한 것으로, 누군가에게 제 비평기준을 강요하기 위한 건 절대 아닙니다. 보고 맘에 들어하는 분이 계시든, 보고서 이게 무슨 허섭스레기냐 라고 매도하는 분이 계시든 신경 안씁니다. 그게 제가 신봉(?)하는 구조주의 비평 이론의 기초이고, 독자가 100명이라면 100가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법이라는 게 제 지론이니까요.
글이 장황해졌습니다. 아마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유일한 포스팅이 될 이 글은 제 블로그에 대한 변명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뭘 가져가시든지, 어떤 감정을 얻으시든지, 그건 가져가시고 얻어가시는 분에게 귀속될 겁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저를 탓하지는 말아 주세요. 물론 그 취지에 대해서, 제 포스팅이 제가 원래 의도했던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라면야 어떤 충고든 감사히 먹겠습니다. :)
수정으로 추가합니다. 이 글은 절대적인 사견이며, 또한 이 글에서 사용하는 비난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와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목적은 트랙백 되어 있는 위의 글에 대한 자극적 첨언이며, 그 외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즉, 이 글은 제 개인의 사상세계에만 결부된 내용임으로, 제 머릿속을 자기 입맛대로 뜯어고쳐놓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생각을 고쳐먹으라는 식의 정중한 비판은 사양하겠습니다. 물론 욕설은 무통보 삭제합니다.
또 수정으로 추가합니다. 댓글 막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평행선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의견조종의 필요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이 옳은가에 대한 결정조차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댓글 막습니다. (이해할 의사가 없이 비판-?-을 강행하는 사람에게 이 글의 특수성을 들어 이해를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부터 귀찮습니다)
과연 트랙백이 필요한가... 라고 말씀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생각난 게 있어서요.
비난은 원래 자신보다 우월한 무언가를 깔아뭉개기 위한 네거티브 에너지입니다. 열등감의 부정적인 표현이지요.
그리고 비난은 자신이 하등하다는 걸 광고하는 짓거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기를 귀찮아하지만 멸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볍게 손바닥으로 때려잡고 말지요.
그런 하찮은 것들 따위, 그냥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는 게 좋습니다.
Commented by 세월강 at 2005-05-14 10:07 x 밸리타고 왔습니다. 사회의 불만 투성이인 저는 그럼 열등감 덩어리? 그런 겁니까? Commented by 세월강 at 2005-05-14 10:10 x 뭐 저는 누구를 비난하고 비난받을 자격이 없지만요....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0:25 x 세월강// 방문 감사합니다. 원래 비난과 비판은 다른 겁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0:27 x 제 블로그의 다른 글을 읽어보셨으면 제 성향 정도는 파악하셨을 텐데, 딸랑 한 마디 읽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저도 슬프군요.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5-05-14 10:33 x 비난이란 남의 잘못이나 흠을 책잡아 말하는 그 '무엇'입니다. 남을 헐뜯고 깍아내리기 위해 오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본질은 '무엇'그 자체입니다. 비난하는 자를 헐뜯고 깍아내리는 일 또한 비난받을 만한 행위가 되겠군요. 비 난하는 사람의 '하등성'으로 비난의 가치를 판단한다면, 이영도씨가 신랄한 비난을 했다면 그 자체로 '고등성'을 획책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비난은 그 '말'이 가진 의미 자체로 판단되어야 하며, 그 비난을 평가하는 것은, 비난하는 '말'과 비난당하는 '것'에 대한 평가로써 충분합니다.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5-05-14 10:34 x 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곳에서, 자신의 글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1:31 x 차가운사과//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할 말이 무지 많습니다.
트랙백된 글을 따라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글의 의도는 특정인에게 어떤 자극을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제가 비판에 대해 달아놓은 어떤 커멘트를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 하나만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블로그에 있는 다른 공개된 어떤 글들을 읽지 않고 말 하나만 꼬투리잡아서 침소봉대하는 건 바르지 못합니다.
방 문은 감사합니다만, 차가운사과 님의 비판(의도상)은 그렇기 때문에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밸리에 이런 두 사람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글까지 공개된다는 걸 몰랐던 제 잘못도 있긴 합니다만, 애초에 널리 공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저를 알고 제가 아는 사람들만 봐 주면 그만인, 은어적인 글이라는 걸 감안하신다면 그런 식의 비판은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은 어긋난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1:38 x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제 글의 요지는 비난하는 사람의 하등성으로 비난의 가치를 판단하자는 게 아니라, 비난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등하다는 겁니다. 저 논리를 적용하자면, 만일 영도님이 마구잡이식 비난을 어디 가서 했다면 그건 그 부분에 대한 영도님의 하등성을 나타내는 게 되겠지요.
제발, 논지를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해 주세요.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1:38 x 덧. 비난이 위를 향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제목은 이영도님의 글 <피를 마시는 새>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캐릭터인 락토 빌파가 그의 아들 스카리 빌파에게 하는 충고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그걸 알고서 이영도님의 예를 드신 건지, 아니면 그냥 제가 친 영도님 성향이라는 걸 파악하신 건지는 모르지만, 영도님의 예를 드신 건 조금 미스매치인 듯 하네요. :)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5-05-14 14:58 x 블로그를 일방향 폐쇠공간으로 활용하시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공개된 이글루에 덧글을 다는 것은 개인책임주의에 의거해서 가능합니다. 물론 동일한 관점에서 덧글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제 글은 트랙백이라는 "엮인 글"에 대한 비판으로써, 그 글의 엮인 대상 또한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덧글을 달 수 있는 권리는 충분히 있다고 사료했습니다.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5-05-14 15:07 x 제 글은 '비난하는 행위 자체엔 어떠한 가치 판단도 개입될 수 없다'라는 주장입니다. 하등하는 사람이 비난을 하는 것과, 비난을 하는 사람이 하등하다는 주장 모두가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현재 이 글은 수정되어 사견이라는 말이 첨부되었는데, 비판을 무시한 비난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군요. 이영도씨의 예를 든 건, 설사 이영도씨의 예기라 하더라도, 비난에 가치판단이 불가능 하다는 걸 설명드린 것입니다. 블로그에 글이 올라가고, 그것이 밸리라는 공간을 통한다는 것에 대한 의무를 잘 상기해 보십시오. 정말 이곳이 '특정인에게만 허용된 무비판적 내밀한 공간'이라면 비공개 이글루를 설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5-05-14 15:18 x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삶을 독자 제한 홈페이지에서 구현한다고 하시면 저는 수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개된 웹 상에서 글을 쓰는 것은, 공책에 일기를 쓰는 것과는 확연이 다른 행위입니다. "접대부같은 KBS 여성아나운서"를 자신에 블로그에 쓴 조선일보 기자는 그 글을 쓴 책임을 블로그라는 폐쇠성으로 면제받을 수 있습니까? '접근 가능한'공간에 그런 글을 썼다는 것, 그 글을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은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6:01 x 차가운사과// 네, 제 말은 차가운사과 님의 비판의 핀트가 어긋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이지요.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 제 글이 밸리에 공개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제 블로그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공간이라는 생각 자체도 별로 안하고 삽니다.
또 한가지 차가운사과 님이 간과하신 걸 지적해야겠는데, 저는 '듣고 싶은 소리만 듣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차가운사과 님의 지적이 '부당하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부당한 이유에 대해서는 위의 제 댓글을 '잘'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6:05 x 비판을 하시지 말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비판을 하려면 핀트를 맞춰서 하라는 거죠. 제가 주장하지도 않은 걸 비판하지 마시고, 제가 주장한 내용이 뭐가 잘못됐는가를 이야기하라는 겁니다.
제 가 자꾸 '은어적인 글'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글의 '특수성'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은어적인 글이니까 아예 귀를 막겠다라는 말이 아니란 겁니다. 최소한, 은어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그 은어가 어떤 체계를 갖고 있는지(즉 아스트레드 님과 제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인지)를 면밀히 관찰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6:06 x 같은 연장선상에서, 제 형식주의 비평 개관 글이라든지,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비평문이라든지, 제 보드게임 관련 비평문이라든지... 이런 글들에 달리는 비판이라면 제가 좀 다른 입장을 취해서 덧글을 달았을 겁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6:16 x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기자의 블로그 글과의 비교는 매우 기분이 나쁘군요. 우선 그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자라는 신분의 공인이고, 그 사람의 블로그는 기자라는 신분과 어우러져서 매체라는 위치로 격상됩니다. 그리고 "접대부같은 KBS 여성아나운서"라는 발언은 은어적인 해석 자체가 불가능하잖습니까.
그 사람이 기자라는 공적인 신분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KBS 아나운서를 접대부같다고 생각하든 지랄병 환자라고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고, 그걸 자기 블로그에 적든 말든 신경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욕을 먹는 이유는 그 사람이 공적인 신분이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겁니다. 즉, 완벽하게 핀트가 어긋난 비교라는 의미입니다.
비교나 비유는 적절할 때 의미를 갖습니다. 완벽하게 부적절한 비교나 비유는 오히려 글의 논지를 해치는 법입니다. Commented by hislove at 2005-05-14 16:22 x 이하, 이 글에 대한 괴(怪)한 댓글은 받지 않겠습니다. 차가운사과 님은 본인의 의견을 접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 또한 이 글의 특수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글"에 한정해서 더 이상 댓글을 받지 않습니다. 댓글 달리면 무통보 삭제합니다.
차가운사과 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차가운사과 님의 자유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1. 언령 시스템이란? (the Upset에서는 언력言力으로 표기했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언령으로 표기한다)
모든 평행세계는 특정한 링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 뒷산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대표적인 링크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지식은 이 링크를 통해 모든 평행세계로 고루 퍼지는데, 언령은 특정한 말의 떨림에 세계의 지식이 공명해 와서 감기는 현상이다. 온 세상에 충반한 이 지식의 보고는 아직 이름이 지어져 있지는 않은데,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단, 감정이나 가치관, 기타 인격을 갖고 있지는 않다.
2. 언령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
내재된 마력을 세상의 원소와 공명시켜 운용하는 마법과는 달리, 언령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즉, 벙어리만 아니면 누구나 언령을 사용할 수 있다.
언령은 특정한 언어의 떨림에 기반한다. 따라서 언령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말을 배워야 한다. OTL
지성을 가진 존재인 세계의 보고는 특정한 언어의 떨림에 감겨 그 떨림을 발생시킨 존재의 머릿속에 그 떨림이 담은 의미에 부합하는 지식을 직접 불어넣는다. 따라서, 단순하게 현재 시각을 알기 위한 언령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소리를 재생시키는 순간 녹음기는 현재 시각을 알 수 있겠지만, 녹음기가 현재 시각을 알아서 뭐 하겠는가. :)
3. 언령의 유효 범위와 제한 범위는 어디까지?
언령은 지식에 관련된 한 무한하다. 언령 사용자는 언령을 통해 얻는 풍요로운 지식 모두를 원래 자신의 것인 양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언령으로 얻는 지식은 기계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머릿 속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된다. 하지만 그 지식은 신체 능력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언령을 통해 언어를 마스터한다면 그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청각장애를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언령을 통해 자동차 운전 방법을 마스터할 수는 없다. 물론 자동차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작하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이론이라면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지만, 운전은 몸이 익히는 기술에 해당되는 것이니만치 언령으로 마스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한 힘이다. 이런 힘이 알려진다면 첩보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다행히도, 지식의 보고는 요청하지 않은 지식을 강제로 밀어넣는 짓은 안 한다. :)
언령이 작용하는 기제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언령을 마스터하는 일은 간단하다. 그저, 단 한 문장을 언령으로 발현시키면 끝이다.
"언령을 사용하기 위한 언어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알려달라."
하지만, 저 문장에 해당되는 언령은 누가 가르쳐 줄 것인가.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까?
그렇기 때문에, 초월자 외의 다른 어느 누구도 언령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것이겠지.
4. 불균형한 설정
뭐랄까, 너무 먼치킨적인 능력이지만 모르면 쓸 수 없는 법. 그래도 여전히 불균형이 심하다는 느낌이다.
애초에 언령을 셋팅했던 이유는 연결된 평행세계에 대한 지식을 주인공에게 알려주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설정을 붙여나가다 보니 뭔가 내가 옛날부터 원했던 몽상의 구현 비슷한 게 되어 있었다. 꿈꾸어왔던 것...
그리고 지금 와서는 초월자 설정을 받쳐주는 기반 설정이 되어있는 언령을 빼버리는 것도 애매해졌다고나 할까 :)
1. 평행세계는 같은 모양. 마을의 구조와 건물들의 배치 등이 거의 동일하다.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는 부분, 생명체-나무라든지, 길가에 핀 잡초, 논밭에서 재배되는 작물 등-에서는 같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다. 하지만 대자연급 현상-화산폭발, 지진, 대륙판의 이동 등-은 대부분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
그런데 평행세계가 겹치는 부분도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뒷산의 나무는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이 소원을 담아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넣는 명소(?)로 유명한데, Upset에 존재하는 평행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이 새긴 글자도 모두 남아있다. 생명체로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
마이라가 새겨 놓은 Ich liebe Stein. - Emalia von Eisen - 과 김민영 양이 새겨놓은 (심의삭제)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게 인상적.
당연히 평행세계 간의 간섭을 묘사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지금 와서야 뭐 :)
2. 평행세계의 사람(데미휴먼, 휴머노이드 포함)들은 모두 이쪽과 저쪽에서 다른 역할로 살아가고 있다. 일대일 대응이지만 연령과 종족은 다를 수 있으며, 이쪽에서 누가 죽으면 바로 이쪽의 다른 누군가에게 전승(?)된다. 그리고, 이쪽과 저쪽의 평균수명이 다를 수 있다. 사실 외모와 겉보기 연령이 완전히 동일한 세라와 마이라의 경우가 독특한 케이스. 그럼에도 조금 닮기는 한다.
그런데 단 한 사람(주인공 제외), 모든 평행세계에서 동일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초월자가 있다... 는 설정이 있다.
주인공과 초월자의 차이라면... 주인공이 표류자라면 초월자는 관조자 정도의 위치에 있다. 능력 자체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지만, 지식 수준이 남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능력자나 마찬가지의 존재.
3. 평행세계는 현재 둘 이상이다. 저 당시 둘밖에 설정 못했지만, 몇개고 더 있을 가능성(정확히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정도의 수준)이 있다. 당연히 세계가 늘어나면 주인공은 잠들 때마다 헤매는 세계가 늘어날 거고, 세계가 몇 개가 되더라도 초월자는 동일 인격으로 살아간다는 설정.
4. 초월자 씨를 제외하고, 한 인격은 모든 세계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하루 합계 24시간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세계가 더 늘어날 경우 각 세계에서의 주인공의 수면시간은 계속 늘어난다. (아래 글의 시점에서는 주인공이 원래 자신의 세계로 인식하지 못하는 저쪽 세계에서는 하루 여덟시간밖에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5. 저쪽 세계는 단 하나의 대륙으로 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완전히 같은 모양이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알려진 하나의 대륙이 독특한 마법적 재밍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나갈 수 없다. 정확히는, 나가면 어딘가 랜덤한 곳(나가려고 시도한 포인트로 도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륙 한복판 어딘가에 있는 화산 분화구 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재밍 밖으로는 튀어나가지 않는다.)으로 도로 튀어나온다. 불확정성이 심각해서 이제는 그런 독특한 시도를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사실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나(특이체질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긴 하다. 주인공도 이 특이체질이다) 원소를 다루는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는 게 힘이다.
마법과 별도로 언령 비스무레한 것이 존재한다. 마법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면, 언령은 지식을 전달하는 힘. 사실 제대로 알면 세계 전체-링크된 모든 평행세계 전체-가 보듬은 지식을 맘대로 꺼내쓸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지만, 언령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모든 평행세계를 통틀어 초월자 한 사람. 사실 주인공이 언령을 이용해서 중간고사 만점을 받는 에피소드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거기까지 진행도 못해보고 쫑났다 :)
아, 혹시나 해서 확실히 말해두는데, 이 설정 만들 때는 풀 메탈 패닉을 보기 2년 전이었다. (...)
이 정도 설정이 좀 구체적으로 짜여 있었고, 언어 설정은 좀 지저분하고, 캐릭터 설정도 몇몇 보이긴 하는데 쓸모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남자로 살아야 했던 한 소녀가 한 소년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라난 보통 이상의 사랑하는 마음이, 하필이면 표류자로 태어나서 양쪽 세계를 오가며 살던 소년을 한쪽 세계로 끌어당겨 고정시키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평행세계 간에 간섭이 시작되는데...
한참 PC통신 하이텔을 이용하던 시절, 그러니까 4년쯤 전에 훼까닥 해서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제 글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여드리는 게 목적이라서 낯뜨거움을 무릅쓰고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저때는 지금의 작가관이라든지 창작관 등이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때라서 제가 지금 생각하는 이상적인 글과는 대략 3파섹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모티콘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든지, 말줄임표를 남발한다든지, 문장이 대부분 어색하게 끊어진다든지, 지나치게 주인공의 심리에 몰두하다 보니 꼭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든지, 반대로 사족이 많다든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고등학교 첫날이니까 새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선생님과도 친해지는 게 좋겠지?" "그 정도도 모를까봐? 나 늦었어! 입학식날부터 지각할라!" '새 친구라고 해도... 중학교 때 친구들이 거의 다 같은학교에 들어갔는걸 뭐...'
오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고등학교라고 해 봐야 중학교랑 같은 재단이어서 친구들도 거의 다 그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규모가 중학교의 거의 두배 가까웠기 때문에 다른 중학교에서 올라오는 애들도 꽤 많다고 한다.
"광/덕/고/등/학/교 라..."
사단법인 광덕학원 안에는 광덕중학교, 광덕고등학교 외에도 광덕여자고등학교와 광덕예술고등학교, 그리고 광덕정보실업고등학교까지 총 다섯 개 학교가 있다. 그렇다 보니 학교 규모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실습 시설과 편의시설들은 모두 학교부지 중앙의 지원센터로 모아서, 총 여섯채의 건물이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오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있는 시스템으로, 규모에 비해 그다지 부지가 넓지는 않은 내실있는 설계라고 들었다.
내가 오늘부터 다니게 될 광덕고등학교는 3번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입학식은 3번 구역 지하체육관.
"...여러분은 앞으로 3년간 이 학교에서 학문을 수양하고 자질을 기르며 교양을 함양하고..."
어떤 학교든지 교장은 따분한 연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입학식이 끝난 뒤 나는 자신이 배정된 1학년 12반을 찾아 윗층으로 올라갔다.
하더니 박은희 선생님은 자신의 귀를 잡아당겨 뜯어(!)낸다. 놀라고 있는 우리에게 들리는 목소리.
"선생님도 테이블토크를 좋아해서 귀걸이 대신 엘프 귀 모형을 달고 다니는 거에요. 예쁘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씩 웃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린애 같다.
잠시 웅성거리다 선생님의 제지로 잠잠해진다.
"테이블토크 반 말고도 CA 반은 정말 많답니다. 대신 우리학교는 한 번 반을 고르면 3년간 똑같은 활동을 해야 하니까, 신중하게 고르세요!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힘들 거라는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 테이블토크 반이 있으면 중학교 때 친구들이 다 모일 건 분명하니까...
"우리 학교는 주 5일 수업 시범 학교에요. 그래서 토요일 수업은 없습니다. 대신, 등교 시간이 좀 빨라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오전 일곱시가 등교시간이에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목요일이요!" "네, 내일은 여덟시까지 오면 됩니다. 내일은 학내 시설 안내랑, 시간표 설명, 그리고 학급위원 선출이랑... 에, 또..." "CA 선택은요?"
아까 선생님에게 질문한 학생이 물었다.
"아, 그것도 내일 합니다. 또 질문 있나요?" "선생님, 출석은 안 부르시나요?" "참, 잊었네요. 그럼 출석 부를께요."
보통 출석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부르는 거지만...
"자기 이름이 호명되면 일어나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세요. 서로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뭐, 뭐, 뭐야!!! 저런 귀찮은...
"권봉근!" "네! 저는 인수중학교에서 왔습니다. 인수중학교 출신은 저 하나밖에 없어서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CA 시간에도 계속 선생님과 만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 그래요."
아까 그 덩치 큰 녀석이군. 근데 그 큰 덩치에 비해 키가 조금 작은 거 같단 말이야... 흠...
"김민영!" "네!"
뭐?? 갑자기 웬 여자 목소리??
"어, 학생은 여자잖아? 어떻게 우리 학교에?" "저, 호적엔 남자로 되어 있어요." "뭐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된 거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지금은..." 하며 둘러보는 그 여자애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그 여자...애? 아니, 쟤는 아까...
"알았어요. 나중에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면담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부탁할께요." "네, 선생님. 아무튼 광덕중학교 출신..." "에~~엑?!!" 광덕중학교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울학교에 여자애가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구!
"여러분! 조용히! 네..." "그 땐 남장을 하고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남장이라? 그러고 보니 3학년 때 우리 반에 김민영이란 이름의 애가 있었다. 쟤가 여자란 말이야?? 뭐 좀 여자애같다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설마 진짜 여자일 줄은...
"김원택!"
호명되었군. 흠... 뭐라고 할까.
"네! 광덕중학교 출신입니다만, 우리 반에 아는 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 "생각...이라뇨?"
"그건..." 하고 이야기하려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봤더니 민영이가 나한테 눈짓을 하고 있다. 제발 이야기하지 말라는 듯 한 눈짓이어서 계속 말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아무튼 저도 CA 시간에 선생님 담당인 테이블토크 반에 들 생각입니다. 저도 테이블토크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게...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호호, 테이블토크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니 선생님 기분이 정말 좋은 걸요. 그럼 다음..."
선생님과의 상견례가 끝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사용할 교과서를 받아 챙긴 뒤에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원택아!"
돌아서 보니 민영이가 서 있었다. 싱긋 웃으며.
"미, 민영아. 너..." "그보다, 아까, 고마웠어." "역시 맞구나... 작년에 너 우리반이었어." "맞아." "어떻게 된 거야? 남장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그러려면 계속 그러든지..." "계속 그러고 싶었는데, 더 이상 남장할 수가 없거든."
하고 싱긋 웃는 민영이의 얼굴이 정말 예뻤다. 예뻤다...?? 뭐야! 민영이는 그냥 친구라구! 이봐! 정신차려!!
"아, 무슨 문제라도?" "응... 여러 가지..."
하며 얼굴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 꿈이라도 꾼 느낌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뿐인데... 이 모든 일이 하룻새에 벌어지다니. 남자애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여자였는가 하면, CA 반에 테이블토크 반이 있지를 않나, 엘프 귀를 달고 다니는 선생님까지... 뭐,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배부른 고민인가?
졸리군... 자야겠다. 몇시지? 겨우 8시인데? 그래도 졸려... ---------------------------------------------------------- 눈을 떴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누군가 내 손을 꼭 붙든 채 침상 옆 의자에 앉아서 잠들어... 침상? 침대가 아니구?
옆을 보니 어떤 여자애가 잠들어 있는데, 짧은 머리에, 붉은색 로브를 입고, 옆구리엔 단검을 차고, 오른쪽엔 1m는 충분히 됨직한 지팡이를 놓아둔 행색이 꼭 환타지 소설의 마도사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무슨 중세시대에나 등장할 만한 옷이군... 어떻게 된 거지?
"깨어났군요, 슈타인."
슈타인? 난 원택이라구! 잠깐... 이건... 꿈인가?
"잠깐, 혹시, 기억을 잃었나요?"
잠깐, 당신은 우리 새 담임선생님이잖아! 어떻게 된 거지?
"일어나요, 마이라, 슈타인이 깨어났다구요."
마이라? 지금 자고 있는 이 여자애 이름인가?
"아...음... 어, 슈타인! 깨어났구나!"
하며 나를 와락 껴안은 이 여자애는... 악! 민영이잖아!
"마이라, 그렇게 좋아요? 슈타인이 깨어난 게?" "당연하죠! 내가 슈타인을 얼마... 앗차. 세라, 사람 놀리기에요?"
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보자니 정말 민영이랑 똑같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이지?
네... 보시다시피 전형적인 이계진입 깽판물...의 패러디가 목적인 글이었습니다만, 역시 작가관이 없던 시절에 대충 떠오르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만들었던 이야기라서 엉망에 개판 오분전.
잠들면 평행세계로 스위칭해 들어가고, 그 평행세계에서 잠들면 다시 원세계로 돌아오는 주인공이 서로 침식해 들어가는 평행세계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라는 황당한 플롯을 구상하고 열심히 글을 써봤으나, 능력부족으로 GG -_-
혹시라도 요청이 50히트 넘으면 뒷부분도 공개할 가능성 있음(펑)
물론, 뒷부분이라고 해도 이 전체 플롯의 1/10도 완성하지 못하고 능력부족으로 손들고 GG쳤으니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글입니다 -_-
굳이 인터넷 신문 읽기가 아니더라도 일본어로 된 사이트를 검색할 때 요미가나가 붙어있지 않으면 좀 갑갑하죠.
요미가나가 친절하게 붙어 있는 일본어 관련 사이트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구글이나 야후 저팬 등에서 일본어로 검색하려고 해도 입력기로 직접 발음을 입력한 뒤에 일일히 한자로 변환해 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한자의 독음을 모르면 입력을 할 수가 없어서 난처해지지요.
아무래도 일본어를 배우는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요미가나가 붙어 있는 글을 많이 읽어서 자주 쓰는 단어의 독음에 익숙해지는 게 가장 좋을 겁니다 :)
그런 분들을 위해! 일본의 모 실력자(?)께서 이런 인터프리터를 공개하셨습니다.
http://trans.hiragana.jp/ruby/
일본어로 되어 있는 사이트를 읽어들여서 본문의 한자에 요미가나를 달아주는 인터프리터입니다. 한자를 히라가나로 바꿔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자 상단에 자그마한 요미가나를 붙여서 화면에 뿌려주기 때문에 웹 페이지의 정렬이 약간 어긋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원 페이지의 레이아웃을 보존해 주더군요.
사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서핑하고자 하는 페이지의 주소를 저 위의 주소 뒤에 그냥 갖다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ex) http://trans.hiragana.jp/ruby/http://www.yahoo.co.jp http://trans.hiragana.jp/ruby/http://www.google.co.jp http://trans.hiragana.jp/ruby/http://www.getchu.com (응?) 직접 써 보시고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아마 꽤 많은 분들이 보셨을 법한, 재탕에 삼탕을 거듭하고 있는 글입니다. 제가 몇 번인가 썼었던 Double B의 기반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작성한 글이라서 글이 조금 껄껄할 수는 있지만, 그런 대로 마음에 드는 글이라서 지금은 수정할 생각은 별로 없네요. 나중에 좀 더 나은 형식주의 관련 글을 쓰게 되면 지울지도 모르겠군요.
0. 들어가며 - 문학과 현실의 관계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학이란 개연성 있는 무언가를 언어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한다. 이 대답은 ‘문학의 수단은 언어’라는 것 외에는 문학의 ‘내용-개연성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만 포함하고 있을 뿐, ‘어떻게?’에 대한 고찰은 빠져 있다. 이전까지의 문학 전통에서 ‘어떻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는 독자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었고, 독자는 그저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어떻게’ 작품을 쓰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이 그저 ‘언어를 통해 개연성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언어로 작성된 개연성 있는 무언가’는 모두 ‘문학’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법원의 판결문이나 항해 일지, 또는 열 살 먹은 사촌동생의 일기장을 모두 문학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전술한 것들을 우리는 대개는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학에는 ‘언어’라는 수단과 ‘개연성’이라는 내용 외의 제 3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20세기 초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이것을 ‘기법’이라고 말한다. 즉, 현실을 문학으로 만드는 요소로서 그들은 ‘기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법’, 혹은 ‘기교’는 무엇일까?
1. 문학이란, ‘기교의 총화’이다.
전술했듯이, 언어로 씌어진 것을 모두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문학이 문학이게 하는 것’은 언어라는 수단만이 아니다. 빅또르 쉬끌롭스끼(Victor Shklovsky)는 문학을 ‘그것에 사용된 모든 스타일 상의 기교의 총화’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극단적인 정의는 ‘문학이 문학이게 하는 것’은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사용된 기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형식주의의 입장을 극명히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슬픔의 때가 지나면 기쁨의 때가 올 테니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ii)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픔의 때가 지나가면 / 기쁨의 때가 오리니.
(알렉산드르 뿌쉬낀 - ‘삶이 당신을 속이더라도’ 중)
i)과 ii)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ii)에는 시적 기법이 사용되어 i)과는 달리 ‘문학’으로 인정된다.
‘기법’에 주목하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언어의 독특한 사용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독특함’은 실용적 언어에서 동떨어진, 무언가 ‘왜곡된’ 언어 사용으로 간주되었다. 실용적 언어가 일상적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된다면, 문학적 언어는 그저 우리가 사물을 일상과는 다르게 보도록 해 줄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시’에나 적용될 뿐, ‘산문’에는 단순히 적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산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실용적 언어의 그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피해가기 위해서 당시 학자들은 ‘문학성’에 대해 좀더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문학이 실용적 언어와 구별되는 것은, 문학은 ‘구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시를 가리켜 ‘언어를 순전히 문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징주의자들이 시를 ‘무한한 것’, 혹은 추상적인 어떤 실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한 반면, 쉬끌롭스끼를 비롯한 형식주의자들은 시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시를 ‘시이게’ 하는 작가의 여러 기법을 밝혀내고자 했다.
2. 문학이란 ‘낯설게 하기’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똑같이 자명종 소리에 맞춰서, 혹은 가족들이 깨워서 잠에서 깨어 학교에 와서 똑같은 시간표에 맞추어 똑같은 강의를 듣는다. 똑같은 필통에서 똑같은 펜을 꺼내어 필기를 하며, 똑같은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 일상은 이렇게 ‘자동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만나는 사물들은 일상적이지 않다. 무언가 낯설다. <안나 까레니나>에서 안나는 어느 날 남편 까레닌의 귀가 매우 못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불노리>에서 서정적 자아는 저녁놀이 질 무렵 강물을 바라보며 ‘괴상한 웃음’을 느낀다. 일상적인 인식대로라면 매일 보는 남편의 귀가 못생겼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저녁놀이 질 무렵의 강물을 바라본다고 해서 괴상한 웃음이라는 인식을 갖지는 못했으리라.
쉬끌롭스끼는 이러한 것을 ‘낯설게 하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낯설게 하는’ 감각작용보다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가져오는 ‘기교’의 본질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3. 네러티브 - 스토리(fabula)와 플롯(sjuzet)
<시학>의 여섯 번째 항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사건의 배열’이라 정의한다. 플롯은 그것이 기본으로 삼고 있을 줄거리와는 구별된다. 영화 <박하사탕>의 구조는 플롯과 스토리가 어떻게 다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시이다. 영화는 시간상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야 할 김영호의 죽음을 작품 맨 처음에 배치함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대로의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렇듯,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스토리를 작가가 어떤 문학적인 의도로 재배치한 것을 플롯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플롯의 구별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네러티브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플롯만이 문학적이며, 스토리는 단지 작가의 솜씨를 기다리고 있는 재료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플롯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의 기교를 포함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주제로부터 간혹 일탈하기도 하며, 인쇄되어 나오는 판형을 이용한 유희를 벌이기도 하고, 작품의 부분을 바꾸어 놓는가 하면, 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을 ‘플롯’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플롯’이란, ‘낯설게 하기’의 연장인 것이다.
4. 기교 대신 기능(function)을 - 지배소(dominant)
역사의 흐름에 따라 사상은 변화하고, 사상이 변화함에 따라 문학의 개념 역시 변화해 왔다. 즉, 문학적 기교의 가치와 의미 역시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해 왔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기교’의 개념 대신 ‘기능’의 개념이 등장했다.
동일한 기교라고 하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심미적 기능을 지니고 있거나 혹은 완전히 자동화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하오체’의 말투는 사극에서는 현실감을 나타내지만 인터넷에서는 DCinside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다. rhyme은 시에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지만 일상생활에서 rhyme을 지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고어적 어법과 같은 어떤 특정한 요소가 ‘소멸’된다면 플롯이나 리듬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그 작품의 시스템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로만 야꼽슨(Roman Jacobson)은 이러한 요소를 ‘지배소(dominant)'라고 정의하였다. 지배소는 ‘다른 나머지 요소들을 지배하고 결정하며 변형시키는, 예술 작품의 중심적인 요소’로 정의된다. 지배소는 작품을 작품으로 결정화하는 초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작품의 통일성이나 총체적 질서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지배소의 개념이 등장함으로 인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텍스트에 대한 시각을 ‘기교의 집합’에서 ‘기능적인 시스템’으로 바꾸어 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영원 불변의 유일한 가치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문학사는 오히려 영원한 혁명의 역사였다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지배소의 개념 역시 이런 역동적인 가치관에서 나타난 것이어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사를 설명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지배소의 개념을 사용한다. 즉 시적 형식은 제멋대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소의 변화’의 결과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5. 맺으며
러시아 형식주의는 사실 기교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간과한 측면이 많이 있다. 하지만, 기교에 천착함으로 인해 그 동안의 문학비평 이론이 간과했었던 영역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비평 이론이기도 하다. 문학을 문학 그 자체로서 바라보자는 주장은 이전의 작가주의 문학관과는 많이 다른 구조주의적 문학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문학이 ‘낯설다’는 것은 독자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에 빗대어 볼 때 낯설다는 의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에서는 이전까지의 작가주의 문학관과는 달리 독자의 역할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작품을 해석하는 능동적인 비평가’의 입장으로 격상된다. 작가는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대화를 제시하고, 독자는 끊임없이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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